시인 박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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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7    업데이트: 23-05-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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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니었으면 큰일났을 그녀, 박숙이 시인의 시 - 강건문화뉴스 - 2020-1.2
아트코리아 | 조회 1,766
시인 아니었으면 큰일났을 그녀, 박숙이 시인의 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거부하고 싶었다

시인이 가진 낱말 하나하나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시

[강건 문화뉴스 이현수 기자]새해가 밝았다. 바쁜 하루를 마감하고 석양이 숨어든 시간, 잊혀 지지 않는 지난 가을날의 사랑을 더듬어내는 시인을 만났다. 가을이 남긴 계절의 소리만큼 그녀의 시에는 잔잔한 기타의 선율에서 울어주는 듯한 애틋한 울림이 있었다. 집안에 켜져 있던 모든 등을 끄고 서재 방에 놓인 스탠드 조명 하나만 밝힌 상태에서 박숙이 시인의시 ‘무’를 조용히 낭송해 보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바르게 성장한다는 것에는 서로가 가진 밀착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시 ‘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흙에 기대어 바람을 맞기도 해보고 아픔도 견뎌 냈을 무의 생이 인간의 생을 닮아 있음을 필자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배울 수 있었다. 박숙이 시인, 그녀가 가진 낱말 하나하나의 위력을 지금 만나보는 기회를 누리는 시간, 말 그대로 오감이 호강할 수 있는 그녀의 시를 만나보자.

 


                   박숙이

보디빌더의 딴딴한 근육 같은 무를 사 안고 집에 왔다
​군대 간 아들이 와 있는 것처럼 집이 그득하다
​씻어도 씻어도 가을바람을 함께 마신 흙이
​어미를 따라온 혈육처럼 무에서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따스해서 정들었던 시간보다 추워서 맞댄 시간들이 저 무살에 박혔으리라고
​흙을 씻으며 생각을 두 동강 뚝 잘랐는데, 아따, 무가 억시기 달다
​싱싱한 무가 단물을 질질 흘린다 흙이 얼마나 애지중지 달게 품었으면
​무가 이리도 훤할까

​몇몇 시인과 함께 뜻이 있어 찾아가 만났던,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소년분류심사원의 소년들도, 흙처럼 따뜻이 품어 안으면 정말 하얀 無가 될까.
​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려면 팽팽하게 고른 땅이라야만 뿌리를 잘 내린다는데
​뿌리 제대로 내리지 못한 그 무들은 이 황금빛 가을을 어디서 만나니,
​만날 수가 없어 어떡하니,
​시퍼런 무청을 지닌 신념 확고한 청년 같은 저 무들을
​엄동설한, 하나하나 마음으로 싸서 얼지 않도록
​바람 숭숭 들지 않도록, 겹겹의 체온으로 감싸고 또 감싸고는 있지만
​다 자라도 이 애물단지들



▲ 박숙이 시인  © 이현수 기자

 
▲ 박숙이 시인  © 이현수 기자


[시인 박숙이 프로필]


·경북 의성 출생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99년 «시안» 시 등단
.2019년<서정주 문학상>

수상

·2019년 대구문인협회<대구문학상 수상>

·시집 「활짝」 「하마터면 익을 뻔했네」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구시협 이사
·대구펜문학회 회원
·수성문인협회 회원
·도동문학회
·일일문학회
·아카리드 동인
 

<이현수 기자의 한 줄 서평>

박숙이 시인의 시 ‘무’는 가볍고 흔한 소재 같지만 의외로 무게감 있고 교훈적이다. 김장을 하기 위해 집으로 들여온 ‘무’였겠지만 그녀는 ‘무’의 단단함을 근육질 좋은 남성에 비유했다. 군대 간 아들이 집에 와 있는 것처럼 ‘무’를 바라보며 흐뭇해 하다가 흙을 씻으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 함께 동고동락해온 이웃과의 사랑도 그러했고 쉽게 지울 수 없는 동지애를 ‘무’라는 시제를 통해 다시 조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억시기 달다’는 경상도식 표현 중 최고의 맛이라는 찬사다. 한 참 물오른 무는 농부의 사랑과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시인이 주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무가 잘 자라는 환경은 사람이 바르게 성장해나가는 환경과 다른 게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꽉 차고 물 오른 튼실한 무를 만들기 위한 농부의 사랑이 없었다면 속이 비고 물이 차오르지 못한 무가 제배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시퍼런 무청을 청년으로 풀어낸 그녀의 시는 생기 있다. 청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젊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을 시인은 거부하고 싶었을 게다. 아프기 전에 청춘을 보듬어가자는 메시지를 그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바람 들지 않게 찬바람 불기 전에 겹겹의 사랑으로 이 땅의 청춘을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 가야할 책임은 분명 어른들의 몫이다. 시인은 사랑도 많고 정도 많은 작가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녀의 미모만큼이나 그녀가 발표해내는 시들이 앞으로 독자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 크다.

GCN 이현수 기자

suya65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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