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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1    업데이트: 22-03-10 10:26

언론평론 자료

2010_8_6 [매일춘추] 눈으로 먹다
노애경 | 조회 827
[매일춘추] 눈으로 먹다

나는 음식 만드는 일을 즐긴다. 화실에서 작업에 몰두하다가도 때가 되면 주방으로 몸을 옮긴다. 음식을 만들 때는 색의 조화에 신경을 쓴다. 보기에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먼저 눈으로 먹고, 코로 먹고, 마지막에 입으로 먹는다고 한다.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에는 그저 배만 불리는 음식이면 되었지만 지금은 요리도 예술에 속할 만큼 인식이 달라졌다. 한 입을 먹어도 맛이 있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먼 곳이라도 찾아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림이 색의 절묘한 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음식 역시 색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적절한 배색의 음식은 식욕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균형 있는 식단으로 영양섭취를 고루 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식재료는 고유색에 따라 각기 영양소가 다르다. 의학적으로도 식재료의 색깔에 맞추어 음식을 먹으면 각 신체 부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요리를 만드는 과정도 그림 그리는 작업과 많이 닮았다.

소재를 정하고 구도를 잡듯 어떤 재료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미리 생각한다. 또한 그림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론적인 수치보다 감각으로 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를 테면 수채화에서 맑은 하늘을 그리고자 할 때 한 번의 붓질로 그 맛을 표현하듯, 푸른 채소를 삶을 때도 끓는 물에 살짝만 데쳐야 한다. 데쳐야 할 나물을 오래 삶아 물러지면 맛과 영양이 손실될 뿐 아니라 입맛을 자극하는 파릇한 색도 사라져 식욕을 감소시킨다. 정성스레 입체감이 드러나도록 꽃잎을 그리고 꽃술을 그려내듯, 화전을 구울 때는 꽃의 색이 유지되도록 조심스레 구워야 한다. 바위의 묵직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겹친 붓질을 하듯 장어구이를 할 때는 소스를 덧발라가며 여러 번 구워야 맛의 깊이가 더해진다. 온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 마지막 한 점 화룡점정으로 완성되듯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에는 고명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제 예쁜 그릇에 요리를 담아내는 일만 남았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전시를 앞두고 액자에 그림을 끼우는 일과 같다. 식탁의 새로운 분위기를 위하여 진열장에 모셔둔 예쁜 그릇을 꺼내 음식을 담는다.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은 먹기도 전에 행복한 마음이 먼저 든다. 나와 가족의 행복한 밥상을 위해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리듯 색조 요리를 하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먼저 눈으로 음식을 먹는다.

화가 노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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