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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대구문화인물 작곡가 박태준
2017-03-02 10:00:55 | 아트코리아 | 조회 2834 |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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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대구문화인물 
작곡가 박태준 
(朴泰俊 1900~1986)

 

박태준은 작곡, 합창단 조직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한국 서양음악사의 기초를 다진 음악가이다. 우리나라 서양 음악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박태준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희망을 노래하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에는 우리 민족의 슬픔이 담겨있다.

 

그는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기럭이’를 작곡하였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라고 알려져 있는 윤극의 ‘반달’보다 6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곡 이다. 192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을 작곡 하다. 이 곡은 박태준이 계성학교 재학 시절 청라언덕에서 만난 첫사랑을 생각하며 쓴 곡이다. 마산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중 시인 이은상이 박태준의 일화를 듣고 곡의 노랫말 을 붙여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 ‘오빠생각’, ‘맴맴’, ‘새 나라의 어린이’ 등은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 씩 불러보았던 곡들이다. 그가 남긴 150여 곡의 동요와 가곡은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박태준이 작곡 활동을 활발히 한 시기는 1920년대 초반 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다. 이후 박태준은 미국에서 합창 지휘를 배웠다. 귀국 이후에는 대구 최초의 일반 합창단 ‘대 구성가협회’를 창단하고 초창기에는 직접 지휘를 맡았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서울에서 전문 합창단인 ‘한국오라토 리오 합창단’을 조직하여 지휘자로 활동하며 한국 합창음악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이뿐 아니라 그는 우리나라 음악교육사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1936년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1948년에 는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며 종교음악과를 개설하다. 이후 연세대 음악대학장을 지내며 후진 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박태준은 평생에 걸친 음악적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예술원 음악공로상, 문화훈장 대통령상 등 굵직한 상을 받기 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남긴 많은 노래들이 현재까지 국민 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그를 기억해 야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자료 제공|대구문화재단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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