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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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    업데이트: 17-11-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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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찬 화백의 자유로운 붓놀림 속 서양 종교·동양 철학의 조우/ 대구신문
관리자 | 조회 1,815



출처 : 대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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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찬 화백의 자유로운 붓놀림 속 서양 종교·동양 철학의 조우

수묵화가 이승찬 개인展 
3일까지 봉산문화회관 
10년간 칩거하며 작품활동 매진 
가톨릭 입문해 수묵화 틀 탈피 
독창적 조형세계 관람객과 소통

갈망하는 그림 세계가 요원해지면서 허방 이승찬의 고뇌가 깊어갔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작정하고 놀아보는 것’이었다. 예술가들과 모여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술을 논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잔이 서너 순배 돌고 취기가 오르면 붓을 잡았다. 홀린 듯 붓끝에서 춤사위가 피어오르고, 새하얀 한지 위에 독창적인 검은 형상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무아의 경지에서 그림이 춤을 출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찔한 행복감이 몰려왔다. 허방 이승찬이 자연 속에서 칩거하며 정진한지 10여년 만에 마침내 자유의 경지를 경험했다. 놀이 속에서 예술을 길어올린 것. 

“작정하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인지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욕망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했고, 먹의 강점이 드러나는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맸던 자유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허방 이승찬의 개인전이 봉산문화회관에서 시작됐다. 이번 전시에는 ‘최후의 만찬’ 시리즈, ‘베드로 닭’ 시리즈, 영웅, 함, 카(숨) 등의 독창적인 조형세계가 걸렸다. 세상과 담을 쌓고 매달린 10여년 정진의 결과다. 

허방 이승찬은 고뇌형 예술가다. 일찍부터 수묵화가 가지는 고정된 틀을 깨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따라다녔다. 대학 졸업 후 가야산에 들어가 그림에 매달렸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의 그림들에 심기가 편치 않았던 것. “나는 오직 수묵화 한 길을 걸어왔다. 먹을 제대로 쓰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늘 같은 수준이 되풀이됐다.”

그런 그에게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가톨릭 입문. 지인의 권유로 가톨릭 교리반에 들어가 강의를 들으면서 예술적 영감이 번뜩였다. 그가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의 예언에서 연유해 가톨릭에서 닭이 베드로의 상징이 됐다고 들었다”며 “베드로 닭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전 닭 그림에 숫자 3을 모티브로 해 봤다. 전혀 다른 닭 형상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서양의 종교와 조형성, 동양의 철학과 조형성이 먹과 한지 위에서 소통하면서 닭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동·서양의 만남이 새로운 조형성을 선물했다.”

이후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티브로 한 ‘최후의 만찬’ 시리즈를 그렸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서양 종교화의 최고봉을 먹과 한지로 그린 것. “만찬 장면은 과감하게 없애고, 열두제자의 전신 형상을 그렸다. 먹의 농담과 선의 형상으로 열 두 제자의 특징을 잡았다.”

지난해 먹을 통한 독창적인 조형세계로 명동성당에서 세상과 먼저 소통했다. 10여년 만의 전시 나들이였다. 올해 전시작은 좀 더 심화된 자유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례 맞춰서 정확하게 그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먹을 흩어놓고 던져놓고 휘갈겨 놓고, 먹이 번지고 스며들기를 기다린다. 한지와 먹의 만남에서 형상이 나오면 그때 슬쩍슬쩍 터치를 하면서 정리해준다. 나와 먹이 협력해 형상이 나오는 즐거움은 먹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과 같다.”

가톨릭 교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수묵화. 쉽지 않은 조합이다. 먹이 가지는 무거움에 종교적 개념이 눌려서도 안되고, 종교의 진중함에 먹이 흡수돼서도 곤란하다. 그는 ‘어린애 같은 천진스러움으로 자연 속에서 즐거움과 낙을 얻는다’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을 소개하며 “내 그림의 핵심은 ‘어린애 같은 천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최후의 만찬’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경쾌하고 천진스러운 이유다. 

경북대 동양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예술가는 고독해야 한계를 넘을 수 있다며 칩거하며 조형적 혁파에 메달려온 이승찬의 전시는 7월 3일까지 봉산문화회간 1전시실에서.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