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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

대구의 근현대기 서화(書畵)와 문(文)의 문화 - 환경(幻鏡, 1887~1983) 스님의 선필(禪筆) 2015년 4월(353호)
아트코리아 | 조회 527

환경(幻鏡, 1887~1983)스님의 선필(禪筆)

 

 

 

  학자의 글씨를 유필(儒筆), 스님의 글씨와 그림을 선필, 선묵(禪墨), 선서화(禪書畵)라 뭉뚱그려서 말한다. 한국 서예의 역사에서 신라, 고려시대는 고승의 글씨가, 조선시대는 유학자의 글씨가 동시대 서풍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신라의 김생이나 영업, 고려의 탄연, 혜소, 조선의 서산대사, 사명대사를 비롯하여 영파, 아암, 초의 등 선사의 글씨가 있어 우리 서예의 역사가 더욱 풍부하였다. 근현대기에도 고승대덕들의 현판, 게송, 법어, 편지 등이 있어 선묵일여(禪墨一如)의 세계가 더욱 넓어졌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2005년 한국서예사특별전 시리즈의 하나로 150여 점의 역대 선서화를 한 자리에 모아 ‘고승유묵(高僧遺墨)’展을 열기도 했다.

 


  근세의 스님 명필인 환경스님은 근현대기 대구 서화계 인물이기도 하다. 환경스님은 석재 서병오, 회산 박기돈 등 대구 서화인들과 함께 해인사와 대구를 서로 왕래하며 시문과 서화로 교유를 나누었고,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만년에 대구에 머물며 많은 필적과 아울러 제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환경스님은 합천군 가야면에서 태어나 13세에 백련암 연응(蓮應)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하였다. 18세 때 견문을 넓히고자 해인사를 나서 여러 명찰을 유력하며 당대의 고승들을 뵙고 가르침을 구했으며 금강산에 들어가 2년간 수도하였다. 33세 때인 1919년, 3월 1일을 앞두고는 오세창의 연락을 받고 상경하여 용성(龍城), 만해(卍海) 등의 지시를 받고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해인사는 불교계의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에 큰 역할을 한 곳이다. 만해스님이 잠시 머물며 강론하여 많은 스님들이 영향을 받았고, 극락암은 용성스님이 출가한 곳으로 지금도 용탑선원으로 가풍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었던 환경스님은 민족정신을 유포한다는 혐의로 해인사의 여러 스님들과 함께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1년 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해인사 주지를 지내며 선원, 율원, 강원을 종합한 도량인 총림을 최초로 설치하여 수행의 기풍을 진작하고자 하였고, 일제가 파괴한 사명대사비를 새로 건립하는 등 해인사의 위상과 한국 불교의 복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백용성, 한용운을 비롯하여 박한영, 권상로, 오세창, 김법린, 현채 등 지사들과 교류하였으며 근세 한국 다도의 큰 인물인 효당 최범술 등 유명한 제자도 여럿 두었다.

 

  어려서부터 신동, 신필로 이름났던 환경스님은 17세 때 관세음보살로부터 붓을 얻는 꿈을 꾸고 글씨 쓰기를 수행과 포교로 여겨 평생붓을 놓지 않아 다양한 서풍의 많은 글씨를 남겼다. 해인사 홍류동바위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지장보살(地藏菩薩)’, ‘절승대(絶勝臺)’, ‘옥류동천(玉流洞天)’ 등이 새겨져 있고, 경내의 편액으로‘경학원(經學院)’, ‘선불장(選佛場)’, ‘수월문(水月門)’ 등이 있다. 단단하고 끈질긴 힘을 내포한 젊은 시절의 예서인 ‘옥류동천’이 새겨진 바위 위에는 원래 옥류정이 있었고 오세창의 편액과 서병오의 주련 등이 걸려 있었으나 1936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명필의 글씨가 많아 용왕국에서 이 정자를 가져갔다는 재미있는 말이 부근 동네에서 전한다). 

 

  ‘용호(龍虎)’ 대련은 일자서(一字書)이다. 일자서는 단 한 글자에 의미와 조형이 모두 집약된다. 용(龍) 자는 비룡이 하늘로 올라가는모습을, 호(虎) 자는 대호가 산속에서 들판으로 내려오는 기상을 강약의 획으로 상형하였다. 필획의 리듬이자 묵획의 드로잉이다. 선승들은 서예의 전통에서 자유로웠고, 서예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능했던 선기(禪機)와 선미(禪味)의 파격이 선필의 핵심이다. 동화사 말사인 비슬산 용천사 ‘범종각’ 편액과 주련은 1983년 종각을 새로 건립할 때 쓴 환경스님의 가장 말년 필적으로 97세로 입적하시던 해의 글씨이다. 백세에 가까운 노필임에도 노당익장(老當益壯)한 활달한 기상이 필세에 살아 있고, 획의 바탕과 운용에는 천진하면서도 한편 멋스러운 심성이 녹아 있다.

 


글|이인숙 한국학 박사, 대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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