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3    업데이트: 20-07-06 13:40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홍도(1745-1806) ‘경작도’
아트코리아 | 조회 26



종이에 수묵담채, 26.7×31.6㎝,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김홍도의 존재를 처음 알리고 출세시킨 그림은 신선도이다. 불로장수의 아이콘인 신선은 생일 축하그림으로 인기가 많아 도화서 화원들도 많이 그렸다. 고전에 충실한 실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중국풍과 달리 기름기가 빠진 김홍도의 18세기 조선풍 신선도는 지금도 여러 점 전한다. 18세기에 유행한 문화 풍조 중에는 명승지를 기행하며 자연과 국토의 현장성을 체험하는 산수 유람이 있었는데 최고의 여행지는 금강산이었다. 직접 답사에 나설 수 없었던 정조는 김홍도를 보내 그림으로 그려 오게 했다. 김홍도가 어명을 받들어 스케치 여행에 나선 것은 44세 때인 1788년이었다. 50여 일 간 금강산과 영동 9군을 여행하며 한국의 자연을 사생한 김홍도는 신선도를 그리던 인물화가를 넘어 조선의 산하를 그리는 산수화가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전의 기회를 주며 김홍도를 단련시킨 패트론은 정조였다.

강세황이 '파천황(破天荒)'으로 극찬한 김홍도의 그림 솜씨는 34세 때 그린 '행려풍속도' 8폭 병풍그림을 비롯한 풍속화에서 더욱 잘 알 수 있다. 대규모 병풍화로 감상용의 풍속을 그린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김홍도는 파천황이라는 말 그대로 전례가 없던 일을 처음 해냈다. 신선그림처럼 정해진 유형이나 화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겸재 정선이 큰 틀을 마련해 놓은 금강산그림처럼 기댈 언덕이 있는 분야도 아니었다. 김홍도는 자신이 본 길거리, 나루터, 가게, 원님행차 등의 광경 중에서 그릴거리를 찾아냈다. 소재를 정한 다음 여행객과 장사꾼, 노소의 시골여성, 양반과 동자, 원님과 수행원 등을 하나하나 묘사하고 당시 생활모습까지 배경으로 넣어 조선의 일상을 현실감 나게 그림화 했다. 이에 더해 장면마다 삶의 이야기와 해학까지 담으면서도 감상화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close]'경작도'는 강세황이 북돋운 김홍도의 풍속인물 실력과 정조가 준 기회를 120%로 완성한 실경산수 실력이 결합된 산수풍속화이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고 그런 풍경 속에 마땅히 있었을 것 같은 모습이다. 파종을 앞둔 농부는 소에 쟁기를 매어 밭갈이를 하고, 밭 언저리 나무 아래에서는 두 노인이 한담을 나눈다. 까치집과 까치 한 마리가 있는 나무는 농담으로 원근감을 준 짧은 사선을 이리저리 그어 마른나무가지를 표현하는 김홍도 특유의 붓질이고, 먹색의 강약으로 리듬을 주며 삼각형 사각형으로 수북하게 쌓은 자갈돌도 김홍도 고유의 필치이다. 쟁기질하는 농부 옆 삽살개도 소소한 정겨움을 더한다. 김홍도는 조선인의 삶의 한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장면으로 남겨놓았다.

김홍도가 1796년 병진년에 그려 '병진년화첩'으로 불리는 화첩에 들어있는 20점 중 한 점이라 따로 낙관이 없는데 이 화첩을 소장했던 김용진(1878-1968)의 수장인 '김용진가진장(金容鎭家珍藏)'이 찍혀 있어 그의 높은 안목과 이 명작의 소장이력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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