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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박생광(1904~1985) '목어' / 매일신문 / 2019-08-14
아트코리아 | 조회 261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박생광(1904~1985) '목어'



1981년(78세), 종이에 수묵채색과 먹, 약 68×68㎝, 대구미술관 소장.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물고기인 목어(木魚) 그림이다. 목어는 불교의식에 쓰이는 사물(四物)의 하나로 몸통은 물고기지만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어서 사실은 용두어신(龍頭魚身)이다. 이 목어를 두드려 내는 소리로 물속의 모든 생명을 제도한다고 하며,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 형상에 언제나 깨어 있는 수행자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도 한다. 절에 가면 범종각 안에 매달려 있는 이 나무물고기가 눈길을 끌고, 상징하는 의미도 깊지만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많지 않다.

이번 대구미술관 '박생광'전에 '목어'와 '목어 밑그림'이 함께 나란히 걸려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목어 밑그림'은 나무물고기와 단청한 기둥을 그의 손이 바로 포착한 생생한 민낯의 필력이고, '목어'는 작품화에 대한 심사숙고, 채색, 공간 구성, 배경 처리, 낙관 등을 거쳐 아름다움을 한껏 고조시킨, 말하자면 풀 메이크업한 실력이다. 밑그림의 단단하고 우직한 선질(線質)은 그의 작가적 심성을 보여주고, 완성작은 형태를 해석한 굵은 주황색 윤곽선으로 붉은색, 노란색, 녹색, 청색, 흰색 등을 감싸며 불교적 소재를 소화한 한국성(Koreanity)이 민족적 감흥을 환기시킨다.[close]박생광, 이 이름 석 자는 현대 한국화 중 채색화를 짚을 때 감사의 심정으로 떠올려진다. 만약 한국 채색그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자기화한 박생광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전하고 부끄러웠을까. 불교와 무속의 종교적 이미지, 역사인물화와 민화 모티프 등 그의 독자적 소재는 필선으로 이루어진 구성적 디자인과 강렬한 채색을 활용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절집의 불화와 단청이라는 역사적 미술에 담긴 거대 서사인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감정을 박생광은 칠순의 나이에 이르러 자신의 서사로 완성해 낸 것이다.

20세기 한국화 분야 작가들 가운데 박생광과 같은 해인 1904년에 태어난 이응노, 김용준이 함께 떠오른다. 이들이 광복을 맞았을 때 42세의 나이였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뿌리에서부터 단절시키고 바탕조차 왜곡하고 우리말까지 말살했던 일제 군국주의의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 사회활동을 한 그들이다.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하기란 어느 시대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들이 극복해낸 암흑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짙었다. 동갑인 박생광, 이응노, 김용준의 행로는 각각 달랐다. 그러나 이들의 성취는 '한국인인 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성찰했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박생광의 말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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