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3    업데이트: 24-04-29 14:47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0>정조가 외삼촌에게 그려드린 매화그림
아트코리아 | 조회 29
미술사 연구자


정조(1752-1800), '묵매도', 1777년(26세), 종이에 수묵, 123.5×62.5㎝,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 22대 국왕 정조가 막내 외삼촌 홍낙윤에게 그려드린 '묵매도'다. 두 살 위인 동년배여서 함께 뛰어놀기도 했던 친구 같은 외삼촌이었다.

정조의 시와 글씨는 다양하게 남아있지만 그림은 이 '묵매도'를 비롯해 '금니사군자' 8폭 병풍, '군자화목' 6폭 병풍, '국화도'와 '파초도' 쌍폭, '추풍명안도' 등이 전할 뿐이다. 두 틀의 병풍과 대련 한 점, 단 폭 2점의 총 5건 18점이다. 정조는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많은 그림을 남겼다.

'묵매도'는 간결한 구도의 그림이지만 큰 크기와 함께 커다란 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벌로 찍은 '홍재(弘齋)'와 '만기여가(萬機餘暇)'다. 홍재는 정조의 호이고 만기는 왕이 다스리는 온갖 일이라는 뜻으로 왕만 사용할 수 있는 문구여서 이 작품이 호가 홍재인 왕의 필적임을 알 수 있다.

두 방의 인장은 정사각형인 큰 크기의 정방인(正方印)인데다, 글자가 붉은 양각의 주문인(朱文印)이며, 인장의 테두리가 넓고, 글자 형태가 굴곡이 많은 인전(印篆)체인 관인(官印)풍이다.

정조는 그림의 낙관으로 어울리지 않는 권위적인 인장으로 '묵매도'가 왕의 그림임을 나타냈다. 만인지상이라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확고하게 자각하고 있음이 인장에서 드러난다.

'묵매도'는 정조의 그림 중 가장 이른 시기인 즉위한 이듬해 가을의 작품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정조의 그림과 글씨는 크기나 인장, 재질 등에서 국왕의 위엄이 시각적으로 가시화되는 특징이 있다. 해서, 행서, 초서를 섞어 멋스럽게 쓴 정성스런 필치의 제화는 옮기면 이렇다.

오행(五行)의 힘에 의지해 삼동(三冬)의 눈서리 물리치고 홀로 동각(東閣)에 아름답게 피었다. 이 꽃을 어찌 사람마다 얻어서 즐길 수 있으랴. 오직 문상(汶上)의 현인(賢人)이라야 가능하다. 지금 세상엔 오직 나의 막내 외삼촌만이 이 꽃을 사랑할 줄 아신다. 내가 비록 서툰 재주지만 이 그림을 올리니 문상(汶上) 삼촌께서는 법안으로 환히 살펴보아 주십시오. 정유(1777)년 중추(8월) 홍재

가을에 매화를 그려드리면서 겨울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오직 외삼촌이라야 감상하기 합당하다고 했다. 매화 가지가 제화를 감싸고 있어 그림이 아니라 외삼촌에게 전하는 이 글이 주인공인 듯하다. 숙련된 필치는 아니지만 그림과 문장을 조합한 구성력과 화면을 장악하는 힘이 대단하다.

외삼촌에게 사적으로 선물한 그림임에도 '묵매도'는 왕의 선물이라는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조는 일거수일투족이 왕으로서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위치를 철저하게 인식한 왕이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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