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3    업데이트: 24-04-29 14:47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34>나이 자랑하는 세 신선의 허세
아트코리아 | 조회 62
미술사 연구자


장승업(1843-1897),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비단에 채색, 143.3×6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송나라 소식의 '동파지림'에 나오는 세 노인의 이야기인 '삼노어(三老語)'를 그렸다. 한 노인이 말한다. "나는 내 나이를 모른다네. 그저 어렸을 때 반고와 같이 놀았던 옛 기억이 있을 뿐." 반고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다.

다른 노인이 말한다. "바닷물이 변해 뽕나무밭이 될 때마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놓았는데 그 가지가 이미 10칸 집을 다 채웠다네." 흔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로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일이 짧은 시간에 일어난 것을 비유한다.

그러자 남은 한 노인이 "내가 반도(蟠桃)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에 버렸는데, 지금 그 씨가 쌓여 곤륜산 높이와 같아졌지." 반도는 삼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신선의 복숭아다. 와우~ 이 정도면 허풍도 예술의 경지다. 내 나이가 더 많다고 자랑하던 옛적 중국 노인들의 허세가 부풀려진 우스개일 것이다.

'삼인문년도'는 머리칼과 수염이 온통 하얀 세 노인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있다. 첫 번째 노인은 호리병이 달린 지팡이를 든 옆모습이고, 두 번째 노인은 손으로 바다를 가리키는데 지팡이에 영지를 매달았다. 승자인 세 번째 노인은 한 손에 복숭아를 들었을 뿐 지팡이도 짚지 않았다.

기이한 바위와 세밀하게 그린 나무가 이들을 둘러싸고 있다. 머리 위로는 탐스런 복숭아가 열린 가지가 드리워져 있고 주위엔 사슴이 노닌다. 세 신선은 파안대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상의 풍경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하나하나 정교하게 묘사해 실재할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화사한 색채와 기이한 형태, 예리한 필선과 부드러운 명암법, 복잡다단한 화면 구성 등으로 회고적 주제를 다룬 장승업은 당시 상해 화단의 영향을 화보(畵譜)를 통해 받았다.

조선이 개항한 후 중국의 문물은 조선과 청나라의 교역항으로 발전한 인천과 상해를 거점으로 네트워크 경영을 시작한 청나라 상인들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위안스카이의 청나라 군대가 서울에 주둔하면서부터는 병참을 담당한 중국 상인들이 남대문에서 종각으로 이어지는 중심 통로인 광통교 주변에 상권을 형성했다.

인천과 상해 사이에 정기적으로 상선이 운항하며 청나라 물건이 서울을 휩쓸었다. 청나라 상인들이 모여 있던 광통교 일대는 유흥가이자 서화의 제작과 유통 중심지였다. 이 주변에서 활동했던 장승업은 상해에서 들어온 당시의 화보를 본(本)으로 삼았다.

장승업의 화풍은 상해화단의 과장된 고전성, 초현실적인 환상성, 장식적이고 길상적인 호사취미를 공유한다. '신품(神品)'으로 찬사를 받은 탁월한 실력의 오원 장승업은 국제파 화가였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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