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3    업데이트: 24-04-29 14:47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29>이야기의 재미 그림으로 펼쳐지다
아트코리아 | 조회 65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10폭 병풍 중 2폭, 비단에 채색, 각 115.3×4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민화 중에서 이야기그림인 '삼국지연의도' 10폭 병풍 중 두 폭이다. 중국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의 방대하고 흥미진진한 내용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각별히 좋아하는 '도원결의', '삼고초려' 두 장면이다.

첫째 폭 '도원결의'는 유비, 관우, 장비 세 영웅이 복숭아꽃 핀 동산에서 의형제를 맺으며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날 수는 없었지만 한 날 한 시에 죽기를 원합니다!"라며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맹세의식을 치르는 장면이다.

황건적의 난을 겪으며 우연적이면서도 운명적으로 만나 의기투합한 의리는 '삼국지연의' 도입부를 강렬하게 장식한다. 셋은 이후 온갖 유혹에 맞닥뜨려도 흔들리지 않았고,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도 끝내 이 결의를 지켜 배신하지 않았다. 세 인물의 전형화를 얼굴색으로 뚜렷하게 드러내 재미있다. 유비는 희고, 관우는 붉으며, 장비는 검다.

둘째 폭은 '삼고초려'다. 삼고초려는 유비의 용인(用人), 제갈량의 지략과 신의가 함께 빛나는 장면이다. 유비가 정성으로 모셔와 참모로 삼은 제갈량 또한 끝까지 의리를 지켰고, 유비가 죽은 후에도 아들 유선에게 충심을 다했다.

'도원결의'에 붉은 끈으로 묶어놓은 검은 소와 흰 말이 있는 것은 이런 본(本)이 있었거나 또는 이 희생의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신 뒤 향을 사르며 맹서의 글을 읽었다는 소설의 내용을 충실히 그림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았던 만큼 '삼고초려'는 화가가 실력을 맘껏 발휘해 초당 안팎 풍경이 다채롭다. 분홍빛 무늬 비단을 드리운 초당 안에는 특유의 관을 쓰고 깃털 부채를 든 제갈량이 졸고 있다. 와룡관(臥龍冠)과 우선(羽扇)은 제갈량의 상징물이다. 책상 위의 책과 문방구, 뒤쪽 벽에 기대놓은 거문고, 그림 속 그림인 화중화(畵中畵)로 묵란과 책거리를 그린 병풍 등 우리나라 식으로 번안한 물건들로 방안이 풍성하다.

초당 오른쪽에는 오동나무가, 왼쪽에는 파초와 꽃 핀 화분들이 있고 화려한 괴석이 장식미를 더한다. 뒤쪽 문에서 두 마리 사슴이 사이좋게 들어오고 한 쌍의 학도 다정하다. 인물, 산수, 누각, 동물, 화훼, 사군자, 책거리 등을 다 잘 그린 화가의 솜씨다.

담장 밖에는 매어놓은 말 앞의 관우와 장비가 있다. 제갈량이 깨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유비를 보며 장비는 분통을 터트리고 관우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린다.

'삼국지연의도' 병풍은 길이가 143㎝, 전체 너비가 445㎝인 대작이다. 대형 화폭에 선명한 채색과 활발한 필치로 상상의 이미지를 마음껏 펼쳐놓았다.

이야기의 즐거움에 몰입하며 열광했던 흥분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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