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2    업데이트: 24-04-23 14:09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순조시대 화원, ‘왕세자입학도첩’ 중 ‘출궁도’
아트코리아 | 조회 189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채색, 34.1×46.5㎝, 고려대학교도서관 소장

새내기들이 새 배움터로 향하는 3월이라 '왕세자입학도첩'을 골라 보았다. 조선 23대 왕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이 204년 전인 1817년 3월에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그림이 행사의 과정에 따라 총 6점으로 그려졌다. 첫 번째 '출궁도'는 궁을 나서는 왕세자의 행렬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성균관에 도착해 먼저 공자와 제자들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에 술잔 올리는 '작헌도', 참배를 마치고 명륜당으로 가서 박사(博士)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왕복도', 배움을 허락받고 폐백을 드리는 '수폐도', 입학했으므로 수업을 받는 '입학도', 절차를 마치고 동궁으로 돌아와 조정 관료와 종친들에게 입학을 축하 받는 '수하도' 등이다. 효명세자가 9살 때였다.

사실 이 입학례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왕세자 교육은 별도의 관청인 세자시강원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효명세자는 좀 이른 나이인 4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5세 때부터 '천자문', '효경' 등을 배우고 있었다. 세자시강원에는 20여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우두머리인 사(師)는 영의정이 겸직하고, 부(傅)는 좌의정과 우의정이, 이부(貳傅)는 찬성이 겸직하는 명예직이다. 차기 왕이 될 왕세자의 스승 직함은 조정의 고위직 뿐 아니라 산림직(山林職)에도 찬선(贊善), 진선(進善) 등으로 배분되어 있다. 실제 교육은 정2품부터 정7품까지 좌우의 빈객(賓客)과 부빈객(副賓客), 보덕(輔德), 겸보덕(兼輔德) 등이 맡는다. 입학례는 성균관에서 공부하지는 않지만 왕업을 닦고 있는 왕세자가 문묘를 배향하며 유학을 존중하고, 스승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학생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는 의례이다. 대개 8세 전후에 이루어졌는데 태종 때 시작해 고종 때까지 계속되었다.[close]긴 행렬을 화첩에 그려 넣기 위해 'ㄷ'자 형태로 궁문을 통과하는 구성으로 그렸다. 제일 위쪽에 10명의 붉은 옷을 입은 가마꾼이 효명세자가 타고 있는 여(輿)를 메고 있는데, 관례에 따라 왕세자의 모습은 그리지 않고 앉은 자리만 그렸다. 그 앞으로 시강원의 문신관료들과 호위무사들이 있고, 그 앞으로 활, 조총, 창 등으로 무장한 세자익위사 무관들이 시위하고 있다. 제일 앞은 왕세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깃발과 부채 등 의장물을 든 좌우의 행렬과 세 마리 백마, 북과 꽹과리, 산개(傘蓋) 등이다. 세 무리 130여명이 왕세자의 행렬을 구성하고 있다.

이 행렬의 목적지 성균관은 조선이 1398년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시작된 교육기관이다. 인재를 길러 완성시킨다는 '성(成)', 그 인재를 통해 사회를 골고루 조화롭게 한다는 '균(均)'에 관(館)은 국가의 공관(公館)이라는 뜻이다. 왕의 공부를 경연(經筵)이라고 했고, 왕세자의 공부를 서연(書筵)이라고 했다. 공부의 유전자야말로 한국을 이룬 힘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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