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2    업데이트: 24-04-23 14:09

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강진희(1851-1919), '서생여사'(書生餘事)
아트코리아 | 조회 299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수묵, 97×28.2㎝, 수원박물관 소장

어느 날 서재의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 속에서 묵향(墨香)에 잠겨 자족한 심경으로 그린 그림일 것 같다. 서재인의 조용한 즐거움이 '서생여사'(書生餘事)라는 진솔한 문구에 드러난다. 고리가 달린 긴 화분에 빙렬 무늬처럼 전서로 써넣은 '장춘'(長春)은 일상의 나날이 이런 고요함 속에서 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전통시대 식자층 남성은 대부분 서재에서 생활하는 서재인이었다. 책과 지필묵연의 문방구와 그에 어울리는 집기들로 구성되었던 그런 공간은 지난 20세기 동안 서방(書房), 문방(文房), 사랑방, 서재, 거실 등으로 주거 형태의 변천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다. 부부간의 호칭에서 남편은 서방에 계시는 서방님이었다. 지금의 주거문화는 남성 가장 전용의 공간보다 가족 구성원 모두를 중시하는 구조로 되었고 가장의 공간은 직업의 분화에 따라 가정에서 사회로 외부화 되었다.[close]서재에 거주하며 서생을 자처한 이 분의 취미는 화분의 소나무 돌보는 일과 차 마시는 일이다. 화분 한 둘 간수하는 일은 정원을 가꾸는 일보다 운치가 있고, 술보다는 차가 서재에 어울린다. 대나무 문양이 그려진 찻주전자도 서재의 물건답다. 이런 그림은 기명절지화로 분류되고 보통은 서창청공(書窓淸供)이니 시창청공(詩窓淸供)이니 옥당청품(玉堂淸品)이니 하는 미사여구가 들어가는데 연한 먹색의 '서생여사'라는 조촐한 화제는 이 그림의 자적(自適)하는 흥취에 어울린다.

'서생여사'는 근대 전환기 중앙관청의 실무 관료였던 강진희의 그림이다. 그는 의관(醫官)을 주로 배출한 중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왜학을 전공했고 사역원 종9품 참봉으로 시작해 일본어 통역 업무를 수행하며 법부와 학부의 관원으로 봉직했다. 상당한 수준의 영어도 갖추어 1887년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1841-1905)이 워싱턴으로 파견될 때 수행단으로 미국에 갔던 일도 있다. 글씨와 전각에 취미가 있었고 그림도 그렸던 그는 퇴직 후 61세 때인 1911년부터 서화가로 활동하며 서화미술회 교수진으로 서예를 가르쳤고 덕수궁 함녕전으로 서예가, 화가들을 초청한 고종의 어람회(御覽會)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각을 잘 해서 해강 김규진이 사용한 인장은 대부분 그가 새겼다고 한다. 서재인으로서 자족하며 즐겨온 취미가 그의 만년을 풍요롭게 했고 서예가, 전각가로 이름을 남기게 했다.

'서생여사' 머리도장은 반통인(半通印)인 경매헌(敬梅軒)인데 그는 자신의 서재에 매화를 공경한다는 이 이름 외에도 초향관(艸香館), 몽미환실(夢未幻室) 등으로도 이름 붙였다. 호를 청운(菁雲)이라고 했던 강진희의 서재는 청운산방(菁雲山房)이기도 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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