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6    업데이트: 22-08-17 09:16

보도 평론 자료

박병구의 풍경화-평면적 패턴화의 현대성과 감성적 상상 공간
아트코리아 | 조회 1,148

박병구의 풍경화-평면적 패턴화의 현대성과 감성적 상상 공간

 

 

大邱미술의 자연주의적 전통

자연주의 미술을 간단히 정의하면 자연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그림을 가리킨다. 그래서 방법적으로 사실주의와 다를 바 없지만 르네상스의 모방적인 묘사에서부터 20세기 표현주의에 와서 사물의 형태에 대한 왜곡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미술을 통칭한다. 또한 주제에 있어서 시대나 역사, 사회현실 따위의 문제보다 인물이나 초상, 자연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 그림이란 뉘앙스를 준다. 그 개념을 좀 더 확장해 본다면 나무와 꽃, 산과 들, 바다와 섬들과 구름이 있는 낭만적인 풍경에 천착하는 태도에까지도 이 용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 경북에서는 일찍이 이와 같은 의미의 자연주의 미술 전통이 뿌리 깊다. 서동진과 박명조 이인성과 서진달 등 초창기 작가들이 모두 자연주의적 정서에 바탕을 둔 회화로 서양화를 시작했으며 경주 출신의 손일봉은 빼어난 유화실력으로 자연주의를 추구한 근대미술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로부터 시작된 大邱미술, 그 안에서도 풍경화의 전통은 금경연 김수명 권진호 등에 의해 발전되어 경북 도내로 확산돼나갔고 해방 후에는 김창락과 강우문 이경희 등에 의해 계승되면서 1970년대의 허용, 강정영, 남충모 등에게로까지 이어져 왔다.

이렇게 일찍이 자연주의 미술의 비옥한 텃밭이 된 대구의 서양화 전통은 1980년대에 지역 출신 젊은 작가들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오는데 밑거름이 되어 전국에서도 주목받는 사실주의 작가들을 대거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면, 패턴, 개성한 자연주의 풍경

해방이 되고 시대적 국면이 전환됨에 따라 영남의 많은 자연주의 작가들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6.25 전쟁을 겪으면서 자연주의적 방법을 벗어나 새로이 추상을 시도하는 작가도 있었지만 구상작품을 하면서도 현대화된 회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대두했다. 1949년 대구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백락종을 위시해서 향토작가로서 박인채와 강우문, 이경희 등 지역 출신들인 대표적인 구상작가들이 그러한 변화를 시도했었다. 또한 대구에 정착한 월남 작가들의 태도에서는 보다 현저하게 그런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서창환의 1950년대 풍경작품은 완전히 평면적 구성으로 바뀌었다. 당시는 자연주의와 추상의 중간지대에 있는 작품을 평면화()한 정도에 따라 구상 또는 반()구상 작품으로 분류되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 지난 1980년대에는 상당한 수의 젊은 작가들이 사실주의 기법을 구사하며 대구화단의 전면에 새롭게 등장했다. 특히 한유회와 같은 단체들이 결성되어 70년대까지 한동안 추상 일변도로 추진되던 미술운동에 가려있던 과거의 전통을 새롭게 하자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구상미술을 진작시킬 운동을 촉발시켰다. 거기서 배출된 지역작가들 중에 상당수는 다양한 개성의 자연주의적 화풍으로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알리는데 성공을 거뒀다. 그 중에서도 평면화한 패턴의 특징 있는 화면으로 현대성을 추구한 경우가 바로 개성 있는 작가로 인식되는 박병구의 회화세계라 하겠다.

박병구의 회화에서 주제는 언제나 자연이었다. 특히 풍경대상에 대한 작가의 주된 관심은 바로 변함없는 이상적인 자연 본성에 있다. 그래서 그의 미적 취향을 자연주의라고 할 만 하지만 양식 면에서 평면적인 패턴화가 두드러진 그의 풍경화면들 볼 때 명백하게 자연주의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야 한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상의 사실적인 깊이 묘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패턴(pattern)를 추구했다. 20세기 초 야수파와 다리파, 청기사파 작가들의 경우에서 보듯 現代化를 추구하는 과정에는 먼저 화면에서 평면화가 필히 수반되었다. 또는 대상의 재현적인 묘사가 아닌 조형적인 왜곡이 시도되고 그리고 구성적인 구축의 단계에 도달해갔다.

그렇지만 유럽 미술의 역사적인 시기에 거의 모든 작가들이 표현주의적인 특징을 띠며 평면화의 단계를 시도했던 것과 달리 박병구의 평면화 과정에는 또 다른 형태로 패턴화의 단계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주관적 정서로부터 대상을 심하게 왜곡하지는 않는다. 단순화와 전형성을 부각시키면서도 혼란스러운 붓질과 두터운 물감 층(impasto)으로 심리적 내면의 정념을 토로할 의도를 보이고 있지도 않다. 평면화를 거치면서 표현주의와는 먼 조형적인 특성으로 개성적인 풍경을 확립했다. 그 결과 현재의 개성적인 화면은 화가의 정신적인 면보다 여전히 객관적 자연을 반영하는 면이 더 크게 차지하는 듯하며 여전히 자연의 상징으로서 기능을 한다. 그래서 이 작가의 조형철학에는 다시 말해 세계관에는 자연주의 정신이 견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연과 감성적인 상상 공간

자연주의 풍경화가의 목표는 언제나 자연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려내어 그 감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그래서 실제로 사생에 기초해 제작을 하며 특히 인상파 작가들의 경우처럼 현장에서의 작업에 충실하려 한다. 대구 영남의 자연주의 화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철저한 사생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전통이 강조돼 왔었다. 손일봉과 김창락의 작품들이 특히 그렇고 강우문의 풍경화들에서도 현장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풍경화들이 많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사는 동안에도 그림을 그릴 때 그들의 눈길은 언제나 자연을 향했다. 박병구 역시 작품의 소재를 찾으러 남해안 일대를 누비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때가 있었다. 특히 80년대 학번 출신들이 졸업 후 겪게 될 시대적 급변상황들을 어떤 태도로 맞이했는가에 따라 그들 작품의 화풍이 결정되곤 했다. 되돌아본다면 여러 갈래의 선택을 앞에 두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돌파할 때 이 작가의 경우는 판단과 결정에 필요한 지혜를 아마도 자연의 현장에서 구하려 했던 듯하다. 그 많은 사생이 바탕이 되어 오늘의 그림이 나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그의 화면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관념화되고 이상화된 자연에 가깝다. 작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재창조된 자연으로써 심상적 풍경이라 하겠다. 그래서 한 평론가는 그것을 몽환적 풍경이 자아내는 미학이라고 평했다. 그의 화면 속 경치들은 어디를 봐도 항구 여일한 자연이 펼쳐진다. 마치 로코코시대 앙트완느 와토가 그려낸 자연처럼 비도 오지 않을 맑은 날이 계속되며 근심걱정도 없는 세계처럼 느껴진다. 또한 19세기 말 피뷔 드 샤반느의 상징주의적 풍경화에서처럼 흐르던 시간도 멈춰 고요한 평화가 지속되는 아련한 광경이 한없이 전개된다.

그렇다고 꿈 속 같지는 않다.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고요한 것이 아니라 반짝이고 일렁이는 작은 움직임들이 있다. 그림 속에 반복되고 있는 선과 형태 그리고 색채가 리듬을 만들고 원근에 차별 없는 채색에도 불구하고 풍경의 형태로써 원근감이 감지되도록 한 시선처리로 인해 일어나는 활달한 움직임들이 있다. 단순화한 형과 색으로 조화로운 풍경의 구성을 만들어 거기서 발랄한 기운과 생기가 느껴지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가의 경우는 평면적 패턴의 현대성과 감성적 상상 공간 사이의 긴장이 불러일으키는 생동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없이 많은 현장을 통해 새로운 구상회화의 길을 찾아 헤맨 결과 현재에 이르렀다는 작가의 주장처럼 그는 자신만의 분명한 회화적 개성을 획득한 셈이다. 긴 시간 동안 그의 몸과 정신에 각인되었고 내면으로부터 끄집어 낸 심상적 풍경화란 견해에 공감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작가의 풍경들을 보면서 간혹 초현실적인 공간감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더욱 마음의 풍경화로 불릴 만하다. 그것이 나른하고 몽롱한 기분에 잠기게 하는 졸음 같은 것이 아니라 명쾌하게 때로는 매우 예민한 감각으로 지각을 깨우는 묘한 생기를 발생시킨다고 느끼곤 한다.

 

영남 구상미술의 미래와 박병구 회화의 실험

박병구 작가는 구상미술이 시대에 뒤쳐진 양식이 아닌가하던 시각에 강한 저항감을 느끼며 강력한 회화로 거기에 답하겠다는 신념을 키워온 작가다. 그런 편견을 깨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손 일봉, 김창락, 허용 등으로 이어오는 대구 구상미술의 한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지금까지 대구출신의 구상작가들 중에는 너무 사실적인 묘사에 치우쳐 기교만 빛났다는 평가를 듣는 작가도 있고 시대적 표현을 담지 못한다는 평도 있었다. 구상미술의 미래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박병구작가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열어 보이겠다던 젊은 날의 꿈을 접지 않은 채 여전히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구상미술의 새로운 비전을 개척해주길 주길 바란다.

 

2016.2.19.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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