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    업데이트: 12-05-13 22:59

CBS 수요 에세이

참 아름다운 것들
강문숙 | 조회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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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것들

 

 

우리는 11월을 떠나는 계절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오랫동안 껴안고 있던 것들을 땅위에 내려놓거나 가지를 비움으로서 쓸쓸함마저 느끼니까요. 그러나 인디언들에게 11월은,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라고 한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비웠으니 언제나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이렇듯 자연의 눈으로 보면 그 이치를 되새기게 되고 사물들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아침 문득, 진정으로 잊고 있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며 사방을 둘러봅니다. 첫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싸늘하게 코끝을 스치는 푸른 대기도 좋지만, 화단 귀퉁이 마른 꽃대궁 사이로, 작은 풀잎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슬에 젖은 채 흔들리고 있는 것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떨어지는 호두나무 잎들을 새벽잠 잃으신 노모께서 정갈하게 비질해놓으신 앞마당도 좋지만, 제멋대로 뚝뚝 떨어지는 낙엽들, 사각거리며 서로 몸 비비는 따스한 소리 더욱 아름답습니다.

대문 안으로 툭, 떨어지는 조간신문의 잉크 냄새도 좋지만, 아직 잠에서 덜 깬 눈 비비며 신문을 주워드는 딸애의 희고 가는 손가락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뚝배기 속에서 대파 줄기가 새파랗게 자지러지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가난한 밥상에 둘러앉아 후후, 불며 아침밥을 먹는 식구들의 동그란 입술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들며 대문을 나서는 일학년짜리 앞집 꼬마녀석도 예쁘지만,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둥그렇게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부디 길 건널 때 차 조심하라며 신신당부하는 젊은 엄마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것에서 새삼스럽게 아름다움을 느껴보려고 할 때 11월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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