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    업데이트: 12-05-13 22:59

CBS 수요 에세이

시간의 선물
강문숙 | 조회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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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선물

 

 

10월의 나무 아래 서있으면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을 햇살 속으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습니다. 어제 올려다보았던 나뭇잎이 오늘 아침에는 땅위에서 뒹굴 있는데, 잎들을 떨군 나무들은 성자 같은 모습으로 팔을 벌리고 서 있네요.

늙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왜 이렇게 마음이 아려오는지, 속절없이 떨어지는 저 낙엽을 바라보면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사십 년 넘게 오고갔던 가을인데 말입니다.

 

-조용하지만 결코 휴식을 취하지 않는, 시간이라 불리는 사물. 굴러가고 돌진하고 신속하고 조용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양의 조류 같은... 이것은 말 그대로 영원한 기적이다.

토마스 칼라일의 이 말처럼, 이 땅의 지난 시간들은 기적처럼 흘렀다해도 과언이 아니죠.

봄 나무에 꽃이 피기도 전에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참사들로 가슴 아팠고, 그야말로 비장한 마음 다잡아 젖 먹은 힘까지 짜내어 대구U대회를 무사히 치러냈던 우리 대구.

이젠 ‘매미’라는 이름만 들어도 지겨운 태풍이 또 할퀴고 간, 참으로 기막히는, 그래서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도시에도 시간의 특별한 선물, 가을이 온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합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좌충우돌 방향도 없이 흘러가고, 경제는 서민들의 편에서 멀어지며 얄팍한 카드 한 장의 위력으로 사람의 목숨까지 저버리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의 가치가 사라지니 가정이 흔들리게 되고 사회마저 불안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문화의 힘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사전적인 의미의 ‘문화’란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 향상을 꾀하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의하여 얻어진 물질적, 정신적 소산의 총체’ 라고 정의합니다. 이 다양하고도 광범위한 현상을 짧은 시간에 짚어볼 수는 없지만, ‘보다 높은 정신적인 가치를 창출해서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는 행위’라고 압축시킬 수 있겠지요. 먼저 우리 생활 속에 ‘문화’라는 말이 존재했었는지 한 번 새겨볼 일입니다. 그것은 특정계층의 전유물이거나 멀리 있는 게 아니지요.

 

자, 한번쯤 가을나무 아래 서봅시다. 가슴이 탁 트이고 왠지 산다는 게 숙연해지지 않습니까. 전시장이거나 시 한 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을 생각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나 문화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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