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    업데이트: 12-05-13 22:59

CBS 수요 에세이

아줌마의 추석단상
강문숙 | 조회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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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추석단상

 

여름방학이 끝나고 한 일주일쯤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입니다. 아이들 개학이 곧 엄마의 방학이므로, 출근과 등교의 아침 전쟁을 씩씩하게 치르고, 설거지통에 빈 그릇들을 잠시 방치해도 좋습니다. 한심하다, 수준 낮다, 투덜대면서도 아침방송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어느덧 열 두시가 됩니다. 몇 통의 전화가 끝나면, 중년의 복병인 아랫배와 허릿살의 반란 또한 무시할 수 없어서 에어로빅이나 수영장에 가서 땀을 흘리기도 하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라의 기둥이라는 대다수의 아줌마들은 이 맛에 삽니다. 그게 뭐 그리 나쁩니까. 이 눈물겨운 자유(?)를 제대로 누릴 사이도 없이 또 불에 덴 듯 콩 튀고 팥 튈 일이 떠억 버티고 있는데요.

 

추석입니다. 전략적인 줄 뻔히 알면서도 백화점이나 매스컴에서 발표하는 추석경기에 마음이 먼저 바빴었지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신문에서 오려두었던 추석 특별 농산물 시장에 들려서 과일, 건어물, 쇠고기 이런 식으로 미리미리 부산해서 사 두기도 했구요.간소하게나마 인사드릴 분들도 챙기고 나니 아, 코끝이 왜 이렇게 찡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얀 무명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시며 잠깐, 아스라한 눈빛으로 둥근달을 바라보시던 젊은 어머니. 육 남매의 둘째 며느리인 어머니는 명절만 되면 부엌에서 종종걸음이셨지요. 대소가의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숙모들과 함께 쉴 틈이 없으셨습니다. 음식은 광주리에 넘치도록 쌓였고, 너그러운 눈빛으로 삼촌들은 용돈을 후하게 수셨습니다. 문중에제일 어른이신 할아버지댁 마당에서 풍물놀이가 무르익어 갈 저녘무렵이면 꼭 한쪽에선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이상한 일은 우리들은 무서워서 곧 울음보를 터뜨릴 지경인데, 어른들은 웃으시는 것이었지요. 참 그때 유난히도 목에 핏대를 올리시며 늘 싸움판에 끼시면서도 제 어머니께는 ‘형수님의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냐고 물으시던 딸기코 시원이 아제는 이제 저 하늘 나라에서 추석을 맞으실 겁니다.

추석연휴에는 공항이 제일 분빈다죠? 해외여행 특수기라고 하니 우리의 추석명절의 풍속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나, 대한민국 아줌마(!)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올 추석에는 고향이라는 영원한 모성의 땅으로 가서 스모그에 찌든 허파꽈리를 새벽공기 푸르게 부풀려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또 이번 추석에는 여자들만 부엌에 밀어넣을 것이 아니라 온 식구들이 함께 음식을 장만할 것과 그 음식들의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웃들과 혼자 사는 노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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