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    업데이트: 12-05-13 22:59

CBS 수요 에세이

‘제 5의 계절’을 보내며...
강문숙 | 조회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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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의 계절’을 보내며...

 

 

우리나라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 외에 제 5의 계절이 있다고 어느 기상학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의 장마 기간, 바로 요즘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식탁 위에 올려놓은 구운 김이 금새 젖은 나뭇잎처럼 늘어지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깨물어도 단물보다는 신맛이 먼저 느껴집니다. 마를 날이 없는 마당에는 잔디 사이로 잡초가 자라 풀밭으로 변했습니다. 시골에서 어린 파 모종을 얻어다 마당 귀퉁이에 심어놓았는데 채 자라지도 못하고 매일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어쩌다가 해가 반짝, 나는 날이면 부리나케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집집마다 옥상에는 이부자리와 빨래 너는 여인들로 분주해지지요. 오랜만에 서로 반가워 안부를 물으면서도 ‘이제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 는 말은 꼭 따라옵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성급한 쓰름매미 소리가 실려와 초록빛 무성한 호도나무를 잠깐 흔들어주기라도 한다면, 그날은 시원한 메밀국수 말아놓고 좋은 친구 불러내기에 바쁘답니다.

 

유난히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제 5의 계절, 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것에서부터 이 계절의 우울을 떨칠 수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가 매주 만나는 그녀의 작은 책상 앞에는 늘 새로운 꽃이 꽂혀 있었지요. 또 다닥다닥 엎드려있는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창가에는 크고 작은 화분이 놓여 있구요. 어떤 것은 잘 말려진 꽃잎으로 걸려 있고, 낡은 기왓장에 다소곳이 앉아서 제 주인을 바라보며 소소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풀꽃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꽃을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꽃 보다 그 주인의 마음이 따라오는 겁니다. 우울증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꽃을 바라보는 마음,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요.

이제 장마도 끝나는 것 같습니다. 수년 전 IMF때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경제 속에 날이 갈수록 빈부 격차가 심해진 탓이겠지만, 정신마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도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던 이 계절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군요. 날씨의 여건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 못한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이 장마기간 동안 온갖 이름 모를 미생물들이 자라 이 지구를 바싹 말라 날아가지 않게 한다니, 정말 자연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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