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3    업데이트: 12-05-13 22:59

CBS 수요 에세이

머무는 시간 속으로...
강문숙 | 조회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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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시간 속으로...

 

 

살면서 더욱 더 절실해지는 것은 ‘공평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분이 주신 우주의 질서, ‘시간’ 앞에서는 불공평하다고 투덜대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의 고요한 이마 위에 아침해가 떠오르고 한 낮의 햇살이 나무 꼭대기에서 부서집니다. 그리고 그 한 낮의 해가 기울면 황혼의 휘장을 길게 드리우며, 아무리 낮은 지붕 위에도 높은 빌딩 스카이라운지에도 어둠은 골고루 내립니다.

 

이렇듯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스물 네 시간. 하지만 어떤 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거야! 한탄하고 또 어떤 이는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시간을 지겨워하기도 합니다. 똑 같은 24시간인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개개인에게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감정적으로 충돌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죠.

 

지난 주말, 한 여름밤을 수놓은 숲 속 작은 음악회가 있었는데, 그때 저는 흘러가던 시간이 잠시 머무는 것을 느꼈습니다. 황금색 루드베키아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길가에 환하게 피어 있는 구부러진 산길을 달릴 때, 마음이 먼저 시간을 놓아버리는 것 같았지요.

 

초로의 신사들이 섹소폰으로 연주하는 찬송가는 숲 속 나무들과 들풀과 논두렁에 엎드린 개구리마저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했습니다. 비가 올까 걱정했지만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스한 눈길 앞에서는 장마철 근심 어린 하늘도 잠시 구름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감상하는 트럼본의 둥근 소리는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오보에의 애잔하면서도 영혼을 깨우는 그 소리는 골짜기 아래로, 아래로 스며들어 신비로움 마저 자아냈습니다.

제가 왜 시간이 멈추었다고 말했는지 이제 아시겠는지요? 시간은 때로 가혹하기 그지없이 저를 지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부족한 점이 많기에 그나마 공평하게 주신 시간 속에서 노력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러나 저는 항상 마음속에 빈자리를 놓아두려고 애씁니다. 가끔 그렇게 예술의 향기가 깃드는 시간 밖의 시간을 찾기 위해서죠.

 

여유 있는 삶이란, 시간을 딱딱하게 견디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구부릴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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