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부부일치 세미나- 소백산 관광호텔 크리스탈 볼룸
잘 구겨지지 않고, 물기에도 번지지 않게
빳빳하게 코팅된 이름표 달고
잘 구겨지고 사소한 습기에도 잘 번지는 부부들이
제각기 잘 코팅처리 된 얼굴을 달고
2박 3일쯤 세미나 하고, 사우나 하고
끼리끼리 손잡고 일치하다가
호텔 정문 앞, 원형 잔디밭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앞줄은 다리를 펴고 앉고
뒷줄은 무릎만 굽히고
맨 뒷줄은 선 채로 어깨를 세운다.
김치이 대시 일치이, 하고 일제히 렌즈 속으로 들어간다.
찰칵! 빛 바랜 흑백사진 한 장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그 꽃밭에는
맨 앞에 채송화가 깔깔거리며 앉고
그 뒤엔 봉숭아맨드라미겹백일홍금잔화
다알리아 접시꽃은 맨 뒷줄에 심고, 아버지 돌아보시며
얘야, 아무래도 너는 꽃밭 한가운데 심는 게 제일로 좋겠구나
서로 말뚝을 박고 금을 긋는 순간부터
한 치의 생각도 일치하지 않는 세상에
세미나 하면, 세상과도 일치하고
남자와 여자도 일치하고
일치할 수 없는 것도 일치할 수 있나.
나도 이제 세미나 해야겠다.
내 푸른 절망과 희망의 일치, 또는
수시로 흔들리며 충돌하는 내 안과 밖의 화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