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    업데이트: 12-05-13 22:49

시인협회수상자특집

우울한, 꼭 그렇지만도 않은
강문숙 | 조회 803

우울한, 꼭 그렇지만도 않은

 

- 갑자기 모든 것이 간단해지고 말았다.

아침이다 ( 레마르크)

 

 

식이요법 이십삼일 째, 맛소금에 버무린 야채는

거의 실신 상태로 밥상에 끌려나와 앉아 있다.

막 한 술 뜨려다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참았던 울음이 터진다.

 

수술대 위에서 열 한시간만에 눈을 뜨고도 울지 않았는데,

그까짓 숟가락 놓쳤다고 그렇게 우냐?

먹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고 우기더니

겨우 한 그릇 밥통이었다니, 치사하다.

(가끔은 생각하는 밥통?!)

 

일흔 다섯 해, 진짓상을 경전처럼 받으시던

아버지. 숟가락 놓치신 일이 왜 없었으랴만

한 말씀, 내 숟가락 위에 얹으신다.

 

숟가락은 생의 바다를 저어 가는 놋대인 거라

놓쳤더라도 겸손하게 다시 잡아야 되는 거라

 

사는 게 가장 진실한 것임을 목메이게 하는 아침.

누가 이런 날 있을 줄 알았을까

우울한,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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