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    업데이트: 12-05-13 22:49

시인협회수상자특집

따뜻한 종이컵
강문숙 | 조회 931

따뜻한 종이컵

 

 

종이컵이 따뜻하다.

공원 한 귀퉁이에 허름한 중년처럼

서 있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다가, 문득

객쩍은 생각을 해본다.

 

짚둥우리 속에서 막 꺼낸 달걀은

암탉의 항문으로 나온 게 안 믿어질 만큼

희고 따뜻하다, 매끈하다.

 

혓바닥 아래 고인 침처럼 상긋하게

피어난 옥잠화의 흰 살결.

벌의 항문을 거쳐서 피어난 꽃들,

그 향기도 대저 항문의 그것이니

 

쿰쿰한 엄마를 열고 나온

신생의 애물단지들아.

희고 아름다운, 향기롭고

따뜻한 것들의 떠나온 문은 하나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슬쩍

거길 만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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