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    업데이트: 12-05-13 22:49

시인협회수상자특집

무게에 대하여
강문숙 | 조회 772

무게에 대하여


 온천 간다.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 네 해 아래의 어머니, 두 살 터울로 여든 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왕고모 둘, 거기다 만만찮은 내 나이도 보태니 합이 삼백아흔셋.

 십사만삼천사백사십오일,삼백사십사만이천육백팔십시간이 씹고, 뜯고, 맛보고, 삭힌 가죽부대는 온통 주름투성이다.

 무게란 물질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 수용되어지는 것만큼의 양인데,  

 왜 이리 가벼운가. 켜켜이 어깨에 내려앉던 그 많은 세월의 무게 다 어디에 두고 하얗게 바스러져가는 누에고치처럼 빈속 쓰다듬으며, 쿨렁이는 바퀴 위에서 저리 쉽게 흔들리는가.

 읍사무소에서 나눠준 경로목욕티켓 빨간딱지의 무게는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고 세상 참 살기 좋아졌다며 김 서린 탕 속으로 들어간다.

 - 점심은 제가 살게요, 괜한 헛돈 쓰지 마라 손사래 치며 한사코 마다하시더니 널찍한 온천뷔페식당 햇볕 따스한 창가에 합죽한 웃음 부려놓고 실눈을 뜬다.

 나이 먹는다는 건 수북하던 접시를 천천히 비우는 일, 오늘 식탁 위에 놓인 하얀 접시 저 여백의 무게가 참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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