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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느끼다] 정숙의 '휴화산이라예' / 시니어매일 / 2022.5.13
아트코리아 | 조회 22
[시를 느끼다] 정숙의 '휴화산이라예'



休火山이라예 // 정숙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꺽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자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2019년 시선사]



뉴질랜드 북도 서쪽에 있는 휴화산 에그몬트


정숙 시인의 시는 활자가 주는 느낌과 내면에 감추어진 의미가 같은 듯 다르게 직조되어 처음 대했을 때는 아~ 참 재미있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그 곰삭은 참맛을 느끼게 된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쓰린 아픔이 있고 폭포수 같은 통쾌함이 있다. 또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진정한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詩의 묘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주 독보적이다. 사투리 속에 해학이 있고 해학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골계미가 있다. 어쩌면 잊혀져가는 사투리들을 이렇게도 알뜰히 찾아내어 새롭게 의미화 시켜 재탄생 시킬 수 있을까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시어사전에도 그의 시어는 많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시는 시인의 수많은 대표작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얼핏 보면 경상도 사람이 아니면 이해가 불가할 것 같다. 그렇지만 사투리는 다 알 수 없어도 여자들이라면 느낌으로 이해가 가능할 것 같고 문맥으로 보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여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하나씩 휴화산을 품고 사는 게 아닐까. 또한 그 휴화산이 언제 활화산이 되어 용암을 분출하면서 터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다독이며 눌러온 이성이 본능과 충돌할 때 그 폭발의 괴력은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자이기에 누르고 참으면서 살아온 한국 여자들의 아픈 애환과 한의 응어리도 전편에 녹아들어 있기에 여자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남자들이 자기 정원에 철따라 피고 지는 꽃의 아름다움을 간과하고 울타리 밖의 꽃에 한 눈 팔고 있음을 질타한다. 비록 울타리 안에 남모르게 피고 지는 꽃이지만 그 꽃에 눈길 주는 외간 남자가 있음도 넌지시 귀띔해주는 애교도 보여준다.

봄비 오는 밤, 빗소리가 임 발자국 소리 같아 귀 기우리며 두근거려 본다. 그러나 임이 오시는 소리가 아닌 빗소리임을 알고는 한숨짓고 만다. 그래서 그 밤을 혼자 지새우기가 너무 적막강산 같다. 그렇지만 여자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인내로 견디면서 혼자서 주고받는 독백이 절창이다. 봄 밤 이라예 안 그래예?

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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