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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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이태수 시인의 해설]
관리자 | 조회 481
에로티시즘의 안과 바깥 
  -정 숙 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이  태  수 <시인>
 
 
 
 1
정 숙은 삶을 뜨겁게 달구고 싶은 열망과 여성적인 기다림의 미학을 뿌리와 줄기로 자신의 생명력에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데 무게중심을 두는 시인이다. 주로 대상(사물)을 여성으로 의인화해서 도발적일 정도로 에로틱하게, 때로는 엉큼하고 능청스럽게 떠올리면서 거기에 자신의 심상풍경을 겹쳐 보여 준다. 극단적으로는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린 듯한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이 구사되고, 여성으로서의 정한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풍자와 해학, 경상도 사투리가 지니는 질박한 정서, 걸쭉한 입담을 곁들여 시 읽기의 즐거움을 색다르게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나 거침없는 듯한 이 외양의 이면에는 그 반대의 정서가 자리매김하고 있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바로 이런 점이 시인 특유의 개성을 강화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듯한 겉모습의 안쪽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가 저며 있으며,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전통적인 여성상이 각인돼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련의 시편들은 시들음이나 져버림에 처연한 마음을 끼얹고 대상을 더욱 너그럽게 끌어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와 삶의 새 지평을 향해 거듭나려는 꿈에 뜨겁게 불을 지펴 보듬는 것으로 읽게 한다.      
 
2     
시인은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 다닌다”(「인생」)고 고백한다. 이 같은 자조적 자기 성찰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쳐도 끝내 그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우며, 타의나 운명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실존의 덧없음을 토로하는 대목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의자’는 더구나 “엉덩이 하나 제대로 걸칠 수 없”고,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같은 시) 작은 의자이며, 그나마도 “내가 끌려가는”(같은 시) 숙명의 의자로 그려져 있다.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듯이, 우리의 삶은 보는 관점에 따라 구차스럽기 그지없고, 비애에서 비켜서기도 어렵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 세상의 삶을 어둡고 무겁게 바라보지만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삶을 뜨겁게 달구고 싶어 하는 여성적인 기다림의 미학이 완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그런 생명력에 불 지피려는 꿈을 부단히 꾸고 있기 때문이다. 상형문자인 사람 ‘인人'자가 말하듯, 사람은 숙명적으로 홀로는 온전하게 설 수 없으며, 그 의미도 무겁고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타인)와 함께할 때 그 뉘앙스는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이성 사이에는 둘이 하나가 될 때 생명력에 절정의 불꽃이 타오르고, 또 다른 새 생명을 잉태할 수도 있게 된다.
 
어쩌면 시인은 생명력에 뜨겁게 불 지필 대상의 결핍을 아쉬워하면서 그런 시절을 꿈꾸듯이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 기다림은 여전히 식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라는 인생의 대명제와 ‘기다림’이라는 삶의 덕목을 끌어안고 있는 시 「벽난로」를 그 한 예로 들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도발적인 에로티시즘 시로 느껴지지만, 그렇게 보더라도 삶의 절정에는 자신이 기다리는 ‘너’가 불붙여 줄 때 이르게 되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경으로 수놓아져 있어  애틋하고 절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내 가슴 뜨겁다고 아무리 우겨도
네가 불붙여주지 않으면
성냥개비 불꽃보다도 못한 내 사랑
 
꽁꽁 언 속살,
식은 재 폴폴 날리는 철길 연정 틈 사이
 
“나, 여기 있어”
초승달 눈빛 공명 마냥 기다릴 수밖에
                          -「벽난로」 전문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여성 화자는 ‘벽난로’에 비유된 ‘자신의 삶’(인생)은 여전히 뜨겁지만 ‘너’가 없으면 그 의미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어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제 홀로 안으로 아무리 뜨겁다고 하더라도(우겨도)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너’(기다림의 대상)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불붙여 주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력은 성냥개비의 불꽃보다 못할 정도로 미미하고, “꽁꽁 언 속살”로 “식은 재 폴폴 날리는” 벽난로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나’와 ‘너’가 두 줄의 레일처럼 평행으로 달리는 관계라 할지라도 그 애틋한 “연정의 틈 사이”에서 “초승달 눈빛 공명 마냥”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있어 그 소망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짐작케 한다. 어쩌면 화자(시인)는 ‘너’와의 뜨거운 만남을 목말라 하는 정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놓여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벽난로」가 좁은 의미로 절정을 꿈꾸는 여성적 기다림의 사랑노래라면, 「연서戀書」는 보다 적극적인 빛깔을 띤 사랑노래라 할 수 있다, 「연서」는 일방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상호의 갈망을 전제로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듯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연서戀書」 전문 
 
 
‘너’로 지칭되는 남성은 ‘먹물’에, ‘나’라는 여성 화자는 ‘한지’에 비유돼 있는 이 시는 한지(화선지)에 먹물의 농담으로 “붓꽃 몇 송이”(수묵화)가 빚어지듯 ‘너’와 ‘나’가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그 결정체인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거느리고 있다.
특히 ‘허기진’, ‘목 타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르듯이, 그런 상호의 갈망이 어우러져 절정에 다다를 때 “하늘 열쇠를 간직한” 데까지 나아가 그 열쇠로 하늘에 닿을 수 있게 된다는 메시지를 내비친다. 이렇게 볼 때, 「벽난로」에서의 ‘너’와 ‘나’가 평행의 철로에 비유된 것과는 달리 「연서」에는 서로가 허기지고 목 타는 관계로 바뀌고,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기를 여성인 화자(나)가 열망하는 적극성으로 발전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시인은 「벽난로」에 불이 지펴지고, 「연서」에서의 소망이 성취돼 먹물을 머금은 ‘붓’(너)과 닥나무가 삶기도 치대어진 ‘한’(정신적인 주체로서의 나)으로 빚어진 ‘한지’(육체적인 주체로서의 나)가 어우러지는 절정의 순간을 구가하는 풍경을 연출해 보인다.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뺀다
붓은 한지에 짙게,
때로는 옅게 먹물을 뱉어 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벼루에 갈린 먹물의 꿈을
걸신들린 듯이 빨아들인다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을 포용하는
붓과 한지의 포옹,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
마침내 햇살 듬뿍 머금고
피어오르는 백련 한 송이  
 
간절한 꿈은 아픔을 함께 나눠야만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난다는 걸
한지와 붓은 묵언으로 보여 주는지,    
저 담백하고 우아한 수묵화 한 점
                    -「수묵화 한 점」 전문 
 
담백하고 우아한 백련 한 송이가 그려진 수묵화 한 점이 완성되는 과정을 노래한 이 시는 도입부부터 화선지에 먹물의 농담으로 수묵화가 완성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지만, 섹스 행위를 연상케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붓’은 남성의 심벌로, ‘한지’는 여성의 심벌로, ‘먹물’은 남성의 정액으로 읽어보면 그 재미가 증폭되며, 원초적인 생명력이 풋풋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또한 두 번째 연에서 묘사되고 있는 바와 같이, 닥나무껍질이 화선지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한’으로, 숯가루덩이가 벼루에서 물과 함께 갈리어 만들어진 먹물이 그림으로 형상화되는 것을 ‘먹물의 꿈’으로 그리면서 ‘한’이 걸신들린 듯이 그 ‘꿈’을 빨아들이는가 하면, 그 절정의 순간을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고 묘사하고 있어 그림이 형상화되는 과정에 격정적인 생동감을 부여해놓는다.  
또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은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과 “햇살 듬뿍 머금고/ 피어오르는 백련 한 송이(화엄향기 품은 연꽃)”는 ‘붓’과 ‘한지’가 서로의 아픔을 넉넉하게 받아들여 끌어안을 때 비로소 거듭날 수 있다는 묵언의 일깨움이다.  시인이 열망하고 기리는 삶은 바로 이 같은 절정의 순간이 아닐는지…….      
 
 3
시인은 그림(수묵화)을 통해 그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는 한편, 그림(수묵담채화)을 그리는 행위와 함께 자신의 삶을 되짚어 성찰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곧 자신의 삶 그 자체이고, 지난날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삶은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바의 한 점 ‘우아한 그림’을 완성하는 데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인식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 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 버린다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부분 
 
이 시는 청매화가 일제히 피어나는 봄날 달밤에 무료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꿈 많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젊은 날 그린 그림(삶의 모습)은 그리 크지도 않은 한지(자신)에 지나치게 많은 꿈(욕심)을 그려 넣었다는 자책을 하게 되고, 이를 지우려 해봐도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그 무게에 짓눌”릴 따름이라는 자성에 이른다.
더구나 그런 봄밤을 지새 보아도 지난날의 얼룩들과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 부각돼 그림 속의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봄밤을 한탄해마지 않게 될 따름이다. 그런 봄날에는 만물이 생동하듯 “마음 저 밑뿌리에서 끓어오르는/ 이 환장할 원죄”(「봄, 설해목」)까지 살아나고, “죄 없는 화선지 찢기도록/ 욕망의 그늘에 채색을”(같은 시) 하며, 연분홍색까지 덧칠하는 자신과 마주치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다. 자신의 그림에 때 아니게 내린 사월 눈발의 무게로 “마음 가지 하나 툭, 부러”(같은 시)지는가 하면, 역시 사월에 내리는 눈은 또한 “옅은 햇살에도 이내/ 질척질척 녹아내”려 “하얀 건 죄다 이내/ 때죽나무 빛”이 되고 말아 “지상에서 빛나는 것은 하나같이/ 질척이다 이내 사라지는 허상일 뿐”(「사월의 눈」)이라는 무상과 허무와 마주쳐야만 한다.
그러나 시인은 시를 쓰면서 자기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징을 치다」에서 보이듯, “살아온 날들을 뱉어내기보다 달게” 씹으려 하며, “맛있게 자근자근 씹을 줄 아는 이만이/ 오아시스를 맞아들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 동력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급기야는 어둠이 되레 자신을 깨우고 그 깨우침으로 시련을 겪게도 되지만, 그 시련의 상처가 바람을 깨우고 바람이 숨은 한을 깨워 그 한이 시를 쓰면서 징을 치게 한다는 비약까지 불사한다.
   
어둠은 나를 깨우고  
가시오갈피나무 사이로 끌고 다니면서
손등과 얼굴을 찔러 핏자국을 낸다
그 핏자국이 바람을 깨우면
시린 바람이 숨은 한 깨우고
그 한이 시를 쓰면서 징을 친다
                   -「징을 치다」 부분 
 
마침내 큰 울림을 빚어내는 징을 치게 되는 이 같은 깨달음의 동력은 시 「화경花經」에서도 묘사되는 바와 같이, 진달래꽃이 피는 광경을 “무리지어 손잡고/ 비슬산을 오르는 저 구도자들,/ 벗은 몸으로 겨우내 제 몸 채찍질하더니/ 무얼 깨달아 저리도 환히 세상을 밝히는지”라는 자연에의 경이와도 마주치게 한다. 이 신성한 경이는 풍경소리에 깨진 바람소리가 “진달래 꽃잎 위에 야단법석”이라는 통찰의 눈을 뜨게 하기도 한다. 이 같은 통찰의 눈은
 
범어 숲의 새들에게
먹이 한 상 잘 차려놓은 해,
종일 더 멀리 살피려 몸 기웃거리다가  
피로로 벌겋게 젖고 만다
끝내 밤바다로 가라앉아 버린다
 
< 중략>
 
해는 어둠에 갇힌 너와 나를 위해
온 정성 다 기울이는데,
몸과 마음 깊이 기울이는 것이  
진정 햇살 사랑법이라는데,
            -「햇살 사랑법」 부분
 
라는 ‘햇살 깊이 들여다보기’로 나아가는 수순을 보여 준다. 이 시는 “범어 숲의 새들”이라고 예시하고 있지만, 기실은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과 어둠에 갇힌 사람들에게 온 정성을 다 기울여 활력을 불어넣는 해(태양)가 그렇게 헌신만 하다가 스스로는 어둠 속에 묻히는 ‘사랑법“을 부각시키고 있어 시인의 마음자리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도 짐작해 보게 한다.    
 
4
시인이 내면을 성찰할 때와 달리 시선이 외부로 향해질 때는 빨간색이나 분홍색 등 밝은 색깔과 발랄한 생명력에 자주 눈길이 주어진다. 장미 시편들이 그렇고, 시 「다홍치마」 등이 그렇다. 이들 시편들은 대상(사물)을 여성으로 의인화해서 도발적일 정도로 에로틱하게, 때로는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게 착색해놓는가 하면, 외부로 향했던 눈길이 내면으로 되돌아오면서 거기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기도 한다.
 
일련의 장미 시편들에서 볼 수 있듯, 빨간색의 ‘장미’와 오월 달밤의 보름에 가까워져 흘러내리는 ‘달빛’에 천착하면서 다분히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거침없는 어조로 돋워 낸다.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하는 오월은 꽃들이 만발할 뿐 아니라 생명력이 한껏 고조되는 계절이며, 이런 계절에 달빛이 환하게 내리는 달밤은 에로틱해지게 마련일는지 모르지만, 시인은 유독 그런 분위기를 타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열사흘 달밤, 입술 새빨갛게 바르고
오월 담장 넘어가는 저 처녀들을 어쩌나!
 
들키면 머리카락 싹둑 잘린 채
집안에 갇혀버리고 말 텐데
 
계남동 그 언니, 문고리 잡고
가시 일으키며 울다가 벼락을 맞았다는데
 
저 피어나는 장미꽃 새빨간 송이들 따라
봄날은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줄장미」 전문 
 
보름에 가까워진 오월 달밤에 담장 가득 피어 있는 줄장미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도 장밋빛이다. 이 때문에 장미가 입술에 립스틱 새빨갛게 바르고 담장을 넘어가는 처녀로 보이며, 부모의 단속이 심할 텐데도 담장을 넘으려고 시도하다 단발을 당할까 우려하는 마음을 드러낸다는 건 바로 처녀 시절의 화자와 같은 처지의 타인 떠올리기와 겹쳐진 묘사가 아닐 수 없다. 더 비약하자면, 시인은 여전히 그런 달밤에 월담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살아 움직인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며, 그래서 머리카락이 잘린 채 방안에 감금된 ‘그 언니’가 “가시 일으키며 울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극단적인 비극이 되새겨지고, 그런 뜨거운 마음도 속절없이 가고 있는 봄날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장미가 지는 모습이 “바람이 장미꽃 빨간 피를 빨아 마시는지/ 핏방울 뚝 뚝 흘리고 있”(「오월, 핏방울」)는 것으로 보이고, “핏빛은 핏빛끼리! 끼리끼리!// 장미들이 목 길게 빼고 구호를 외”(「찔레」)치는 것으로 그려지는 심경도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장미꽃잎들이 시들며 다급해진 발소리를 내고, 장미 가시는 더 억세게 발톱을 세우는 정황이 이르러 “무작정 쫒기며 시의 바짓가랑이에,/ 처용무 그림 옷깃에 밤새 매달”(「외간에 중독되다」)리는 시인의 심경은 ‘외간에 중독’될 법도 하다. 시인은 마침내 「화간」에서는 억제되거나 잠재돼 있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낮엔 새침하더니 요상하다
달빛 끌어당기는 꽃잎의 눈빛,
 
오월 담장에 기대서서 바깥을 살피는
흔하디흔한 장미꽃인데
어느 품이라도 마구 파고드는 색골
달의 끝없는 곁눈질에 그만 빨려드는지
 
따지고 보면 네 것 내 것
그 경계선이 어디 있으랴
달빛과 꽃의 은밀한 통정, 그 내연의
부적절한 관계를 엿본다
달빛은 도톰한 꽃입술을 만져 본다
몇 겹의 꽃잎 헤집으며
자신을 밀어 넣는다
꽃은 더 진한 향을 내뿜으며
붉어진 눈빛으로 온몸을 부르르 떤다
 
밤의 내통을 은근히 즐기는 변태의 관음증
달빛도 꽃도 나무도 다 나의 외간들이니
어쩌랴, 거부할 수 없는 이 색정,  
강간이 아닌 원죄를 위한 자연이니
색정은 내 시의 길이자 천형인 것을
                         -「화간」 전문 
 
풀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호소력으로 감각을 파고드는 에로티시즘 시다. ‘장미꽃’은 섹시한 ‘여성’, ‘달’은 곁눈질 잘하는 ‘남성’으로 의인화한 듯한 이 시는 줄장미를 새침하면서도 바깥을 살피는(외간을 넘보는) 색골로, 달빛을 달의 곁눈질로 그리면서, ‘색골’과 ‘바람둥이’의 화간을 그려 보인다. 더구나 이 화간은 경계(윤리 도덕)를 넘어선 은밀한 통정이며, 부적절한 내연일 뿐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격정적이어서 모든 경계를 허문 원초적 생명력의 극치 묘사에 다름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 시에서 각별히 간과해서 안 될 대목은 마지막 연에 있다. 화자가 이 화간에 끼어들면서 스스로 “밤의 내통을 은근히 즐기는 변태의 관음증”은 자신의 몫이며, 그 ‘원죄’인 자신의 ‘색정’은 “내 시의 길이자 천형”이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어떻게 풀이할지 모르지만, 시인은 어쩌면 이런 천형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일는지 모른다. 아니, 그런 천형 때문에 감각의 촉수를 언제나 첨예하게 곤두세우며 아름다운 감성의 결과 무늬들을 빚어내게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외간 사랑하기’(시 쓰기)는 시 「간통」의  “눈앞에 있는 사랑초 꽃송이 품에 들어/ 내연의 관계 뜨겁게 애걸해야지”라든가 “내 시가 풋풋해질 수 있도록/ 통, 통, 서로의 비밀스러운 정을/ 글로써 간통簡通해야 하리”라는 ‘간통姦通의 간통簡通 변용하기’의 대목 등에도 암시돼 있다.
 
 
5
신라시대의 향가인 「헌화가」, 미당 서정주의 시 「화사花蛇」, 「해가海歌」 등의 구절을 상당 부분 차용하면서 특유의 관능적인 감각과 유머러스한 감성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메타시 「신新수로부인뎐」, 고려가요를 일부 인용하면서 자신의 요즘 심경을 부분적으로 떠올린 「한밤중 손님맞이」, 이성복의 시 「남해금산」을 육감적으로 재구성한 메타시 「신新남해금산」 등도 시인 특유의 어법을 동원한 에로티시즘 시라 할 수 있다.  
이들 시와 함께 제3부에 실린 작품에는 대부분 「신처용가」 등의 초기 시에서와 같이 우리의 전통적인 여성으로서의 한이나 정한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풍자와 해학, 투박하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구사, 걸쭉한 입담 등으로 시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것 같은 외양 속에는 그 반대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침없고 활달한 해학과 풍자의 이면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전통 여성상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    
카바레에서 ‘지르박’을 추면서 “제비 선상님 눈길 피해/ 말춤이나, 에라 모르겠다 헉, 헉/ 궁디이 막춤으로 또 숫자에서 벗어났다/ 남정네들이 여자들 지멋대로 통 속에 가두는 법/ 언제 맹글었노/ 시집살이는 춤을 잘 춰야 한다미/ 뺑빼이 돌리미 인내들 혼을 쏙 빼놓고/ 맨날 그카다가 귀한 한 평생이/ 니 맛 내 맛도 없이 삼류 물거품으로 사라지고”(「‘육’에 갇히다」)라는 자기(전통적인 주부) 현실에 대한 갑갑함과 일탈에의 충동을 거침없이 쏟아 낸다. 또한 「봄바람과 깔깔춤」에서와 같이 “뻐덩뻐덩한 나무토막 내 몸을/ 카바레 물찬제비는 모란 꽃봉오리 쓰다듬는/ 봄바람처럼 손가락 눈짓으로/ 제 숨결 가까이 당겼다가 놓는”는 가운데 “뽕짝 리듬 사타구니 사이로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지르박을 추며 ‘공회전’을 하다가도 아흔여덟 노모의 “한 생이 간다고 아까워 마라”는 말을 곱씹게 되는 바와 같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제4부의 연작시 「방천 연가」는 청소년 시절의 앨범과도 같은 추억 반추에 주어지면서 시인 특유의 질펀한 언어로 다양한 기억의 그림들을 펼쳐 보인다. 시인이 그리고 있듯이 지금 ‘김광석 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방천 부근은 “여전히 낡고 좁은 장터 골목길”이지만, 그 골목길과 인근의 삼덕동, 대봉동 시절은 시인에게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의 공간으로 부각돼 있다.
그곳은「처용아내 치맛자락이-방천 연가 1」에 그려져 있듯이, “단발머리 중학생, 머리카락 쫑쫑 땋은 여고생, 긴 머리 출렁이던 대학 시절 첫 가든 파티, 라일락 향기 시절에서, 넓고도 낡은 적산가옥에서, 시집살이 십오 년”이 고스란히 살아나게 하는 공간이다. 게다가 “잘 다듬어진 맏며느리의 탑 하나 세워보겠다던 그 오기, 몸빼바지나 월남치마 길게 끌며 장바구니에 끌려가는 청춘, 존심 세워 처용가 부르며 칠칠맞은 손 흔들어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시인은 자취생 소녀 시절, 인심 후하던 방천시장 노점의 “잇몸웃음으로 콩나물 한 줌 더 얹어주시던/ 그 합죽할머니”(「콩나물시루-방천연가 2」)가 보고 싶어지고, 삼덕동 적산가옥 시절 “아파트에 사는 젊은 동서가 온 날/ 몸빼이 입고 시장에 고추 빻으러 갔다가/ 맞은편 소고기국밥 한 그릇 후루룩 삼”(「고추기름, 눈뜨다-방천 연가 3」)키고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듣던 꾸중까지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런가 하면, ‘탈모통’에서 털이 뽑히는 닭의 모습이 “시집살이 입방아에 시달리는 한 여자(자신)와/ 닮았다고 생각하”(「탈모통-방천 연가 4」)던 기억, “여름날 천둥 비바람 가려주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푸른다리 아래-방천 연가 5」)의 그 아련한 밀어들, “첫사랑이자/ 마지막 그리움을 함께 앓고 있는”(「신천 수달에게-방천연가 6」) 자신과 ‘수달’에 대한 절절한 연모의 정, 자신을 김광석과 겹쳐 떠올린 「김광석-방천연가 8」에서의 “등짝 내리치며 시인의 길로 재촉해준/ 시어머니와 그 가족들”도 어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안 떠오를 수 있겠는가,
또한 “밥 한 끼 먹기 어려웠던 시절, 셋째 넷째 딸까지 대학공부 시킨 아버지 어머니”(「바보다듬이질-방천 연가 9」) 생각, “사대봉제사 장볼 때마다 충실한 짐꾼이지만 책임감만 수놓은 앞치마 두른 살갑지 못한 며느리 때문에 어머님이 도리어 어른에게 따돌리는 기분”(「시할머니 보살-방천 연가 10」)이었을는지 모른다고 되짚어보는 생각도 하면서 그 힘들었으면서도 그리운 시절을 향해 “봄날도, 여름도, 가을까지 다 그냥 보내 버리고/ 찬 서리 겨울 늦바람에 몸부림치는/ 여자의 몸과 골진 마음을/ 다시 화사한 봄날로 수선해 줄 수는 없나요?”(「수선하다-방천 연가 11」)라는 심경에 다다르는 건 그런 비애 너머의 풋풋한 삶을 여전히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6
마지막 제6부에서 시인은 시들음이나 져버림 등에 안타까운 마음을 처연하게 끼얹으면서 몸과 마음을 겸허하게 낮추곤 한다. 하지만 대상(사물)을 한층 더 너그럽게 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시인으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열망해마지 않고 있다.
“봄날도, 여름도, 가을까지 다 그냥 보내버”(「수선하다-방천 연가 11」)려서일까. 시인은 “밤새 쓴 단편소설 한 부분을 꼭 쥔 채/ 빈 배를 기다리는 여자”(「닻줄은 왜 흔들리는가」)가 되어 따스한 바람이 “언제쯤/ 살을 에는 바람으로 돌변할는지”(같은 시) 두려워하는가 하면, 고향의 자인장에서 ‘돔배기’를 보면서는 “누가 나를/ 자인장 상어 눈알로 만들었느냐”(「자인장에서 상어 만나다」)고 처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지금 처지도 내비친다.
이젠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버린 시인은 현실 너머의 고향 생각에 젖어 「계정숲」에서는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콩닥거리던 가슴’이나 ‘아버지의 젊은 맥박’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난 겨울」에서는 궂은비 오는 캄캄한 밤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좋아한다고/ 커피 한 잔으로 겉멋을 부”리던 철부지 시절을 반추하는 등 타임머신을 타듯 추억여행도 감행한다.
그러나 다시 현실로 되돌아와서는 남편과 자기 방 사이에 온갖 꽃을 피운 잡초들을 보면서 “경계선 제멋대로 지우고 날아다니는 콩새들의 자유로운 하늘, 멀거니 바라보”(「비무장지대」)는 목마름에 빠질 때도 있으나, 「꽃구경」에서처럼 봄맞이를 하러 멀리 여행을 떠났다 귀가해서는 손녀가 와락 안기며 “예쁜 할머니!”라고 하는 재롱에 할머니의 자리를 기꺼워하는 일상인으로 회귀하면서 긍정의 시각을 되찾게 된다.
이 같은 마음자리는 백수를 넘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로 열린다.  “한 세기 봉화 불 켜들고 남편과 자식들, 아래위 이웃에 꺼진 불붙이려 동분서주하던 번개탄, 이봉화 여사”(「번개탄, 이봉화뎐」)라고 추키면서도 “죄인처럼 세상 바람과 오남매 밑밥으로 씹히다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이제야 풀려나신”(「씹히다」) 것으로 고난과 희생의 한 생애를 연민으로 끌어안는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딸들아, 삶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너거들 덕분에 재미있게 잘 살다가 간다
엄마도, 여자도 흙덩이 속에 묻어 두고
떠날란다, 날 애타게 부르지도 말아라
 
하얀 국화꽃 이파리 뿌리오니
엄마, 이 꽃 이파리로 날개 엮어 날아오르세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 참혹한 일도 다 엮어
봉화 꽃밭 잘 가꾸셨잖아요
그 아픔들 오목천에서 금호강으로
잘 흘려보내셨지요
 
하늘 문 열리며
벚꽃잎들 화르르 날아오르는 날
이십칠 년 동안 기다린 남편, 우화 씨 만나 손잡고
색동 옷자락 휘날리며 처용무 맘껏 추세요!
어얼쑤! 덩, 덩, 덩기덕
                                  -「하관」 부분
 
풀이가 되레 군더더기나 사족이 될 정도로 쉬운 구문으로 쓰인 이 시는 타계한 어머니와 딸의 ‘서로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대화’이자 ‘이심전심의 무언’으로 구성된  ‘시인의 마음의 그림’들을 펴 보여 따스하고 푸근한 인정과 질박한 휴머니티가 가깝게 집힌다.  
도편수가 자기 돈을 훔쳐 달아난 주모를 나부로 조각해 절의 추녀 밑에 올려놓았다는 전등사의 나부상을 주제로 쓴 연작시 「전등사」는 이 애달픈 이야기 얽힌 사연에서 발화된 시인의 느낌들을 다각적으로 떠올린다. 나부상의 눈빛, 도편수와 주모의 ‘비린 인연’, 그 인연과 부처님의 미소, 나부상이 된 주모가 한 마리 저승새로 날아오르려 한다는 화사등선花蛇登仙, 인연의 줄 때문에 전등사 처마 밑을 떠나지 못하는 도편수의 비가 등이 시인의 개성적인 어법 속에 부각돼 있다.  
이 시집의 끝머리에 담은 시 「풋울음 잡다」에서는 타계한 어머니의 ‘말없는 말’에 귀를 열면서 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새 길을 찾아 나서려는 메시지를 새겨놓고 있다. 놋쇠가 풋울음 잡히려면 불 속에 수없이 담금질되고 수천 번 두드려 맞아야만 꽹과리나 북소리를 감싸 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도 달래줄 수 있는 징이 된다는 메시지는 시인이 바로 그런 과정을 앞으로도 거듭하며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의 암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시인은 1991년 《시외시학》으로 등단한 뒤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영상시집』, 『바람다비제』, 『유배시편』 등 여섯 권의 시집을 내면서 끊임없이 개성적인 시적 성취의 길을 걸어왔으며, 이번 시집으로 더욱 뚜렷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시의 참다운 징수’로 거듭나기를 염원하는 시 「풋울음 잡다」의 마지막 두 연을 인용하면서, 부단히 ‘풋울음’을 잡으려는 정 숙 시인의 시가 앞으로 더욱 높이, 깊이 빛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
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풋울음 잡다」 부분 



 
덧글 2 개
관리자 17/09/27 21:02
추석 잘 지나세요.
둥글 둥글 복 받으세요.
관리자 17/09/22 11:00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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