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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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선생님은 '만해 전문가'로 유명…내게 시인의 길 활짝 열어줬지요" 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동석기자]
아트코리아 | 조회 156
정숙 시인의 스승 고(故) 김재홍 문학평론가


'시와시학' 시인 모임 사진. 앞줄 왼쪽 고 김재홍 문학평론가, 오른쪽 정숙 시인. 정숙 시인 제공


50여 년간 한국 현대시를 연구한 문학평론가 산사 김재홍 선생님이 지난해 1월 향년 75세로 별세하셨습니다. 문학계에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올해로 돌아가신지 1주기를 맞았지만 아직도 그리움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문학계에 큰 업적을 남겨셨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만해 전문가'로 유명합니다. 1982년 서울대학교에서 한용운 문학연구로 국내 첫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선생님이 쓴 '만해평전'은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해학회 창립을 비롯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초대 상임대표, 설악산 백담사 만해마을의 만해문학박물관장과 만해학술원장도 지내셨습니다.

4대가 적산가옥에 같이 살며 시집살이란 늪에 빠져있던 내게 시(詩)란 하나의 구원의 밧줄이었습니다. 시는 '해와 달' 얘기 속 밧줄처럼 썩지 않아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정인숙이란 이름에서 정숙(예명)의 가설무대를 화려하게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길을 도와준 분이 시와시학사의 주간이시고 평론가이신 산사 김재홍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스캔들로 성격파탄자란 소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각 지방의 숨은 시인들과 작품을 발굴하고 널리 소개해 주셨습니다. 시와시학상, 정지용의 지용상, 김영랑의 영랑상, 만해님시인상, 만해상, 유심상 등 여러 가지 상으로 시인들이 빛을 보게 한 공로자입니다.

선생님은 시를 보는 비평은 가차 없이 날카로웠습니다. 그러면서 최고의 시인들과 많은 추억도 남겨 주신 분입니다.

무엇보다 정숙의 첫 시집 〈신처용가〉에 박수를 쳐주시고 세상 모르는 필자에게 자존감을 살려준 분입니다. 〈신처용가〉는 1993년 여름호 시 전문지 시와시학사에 등단했습니다. 등단식을 위해 전국에서 유명 시인들이 대구 동아쇼핑에 거의 다 모였습니다. 행사 후 선생님을 비롯한 시인들은 팔공산에 있는 호텔에서 1박을 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시는 거의 18행에 담아야 간결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실행하려 노력중입니다.

〈신처용가〉는 출간하고 바로 [한국 현대시 시어사전(고려대출판부, 1997)시어사전]에 수많은 대구경상도 사투리[모국어]들이 시어로 등재되고, [한국현대시100년 명시감상․전5권(문학수첩, 2004)] 집에 '웬 생트집' 시가 수록되었습니다.

나는 그 힘으로 대구 문학 아카데미 시 창작반 강의, 시 마을, 포엠토피아 포엠 스쿨 정숙반 등 인터넷 강의를 하고 여러 도서관에서 거의 30년간 시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날 현대시박물관 홈페이지에 비밀글로 주신 시 한편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쪼다 같은 여자 그래서/ 귀여운 여자/ 지상에서/ 가장 죄 없는 여자 일까[?]' -'정수기(정숙 시인), 그 여자 시인'의 부분

선생님은 정(情)도 많았습니다. 필자의 스카프 빛이 너무 붉다며 진한 자줏빛 스카프도 선물해 주셨습니다. 또한 필자에게 정숙은 처용아내 연작시로 자신만의 장엄한 성을 쌓았다며 칭찬도 해주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봄날은 간다 1'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시극 공연과 시 퍼포먼스, 시낭송 등 시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여기에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산사 김재홍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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