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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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문협4호원고 시 해설 -이 정화 시인의 산벚꽃을 읽으며
관리자 | 조회 266
이 정화 시인의 산벚꽃을 읽으며 
  -정 숙 시인
올해 또
저 아득한 산등성이
흰 기별
손닿을 수 없는 그리움
 
잊었거니
이미 잊혔거니
 
나무 잎새들 시퍼렇게 눈 떠 자라나는 봄날 한복판
샛서방으로 먼 풍경에 숨어들어
 
숨결 뜨거운 채
가슴에서
가슴으로 올리는
흰 봉화
 -[산벚꽃] 전문
 
회원들의 그 많은 작품 중 한편만 골라 시 해설을 해야 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왜냐면 회원 대부분의 작품들이 우수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으니 그래서 작품들 중 등단이 빠른 시인을 정하기로 했다. 1991년 등단 선배, 이 정화 시인의 벚꽃 그림자에 아득히 밟히고 있는, 조금은 고전적이지만 시인의 살아있는 감성과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세련된 상상력에 새삼 반갑고 놀라웠다. 필자는 상상력이 시를 성립시키는 원리로서의 능력이며 힘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바슐라르는 창조를 위한 내면적 힘으로 해석하기도 했으니
 
시 [산벚꽃] 1연에서 시인은 산벚꽃을 ‘흰 기별, 손닿을 수 없는 그리움’ 3연에서는 ‘샛서방으로 먼 풍경에 숨어들어’ 4연에서는 ‘가슴으로 올리는 흰 봉화’로 은유하여 마무리하는 연상 상상력의 이미지화에 성공하고 있다. 산벚꽃이 그리움이 얼마나 강했으면 봉화불을 피우고 있겠는가? 아주 함축적이며 행간에 많은 말을 숨겨 단순하면서도 봄날 먼 산 산벚꽃의 아름다움과 그런 봄날, 나이에 상관없이 환장하는 여성의 그리움까지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가? 특히 샛서방이란 시어가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하여 이정화 시인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등단하고 그 오랜 시간 늘 숨어있는 느낌이 드는 시인, 힘 있는 선배 시인들의 끈을 잡아 좀 더 이름이 나려 안간힘을 쓰는 시인들도 몇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묵묵히 혼자 나아가는 시인의 자세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시는 대체로 상상력에서 작품의 수준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으니 체험이나 추억을 정서로 환기시키는 재생상상력의 작품보다 단순히 체험을 정서로 환기 시키는 일에서 나아가 경험을 통해 떠올리는 이미지를 결구시키는 존재화, 물화할 수 있는 능력을 연상상상력이라 한다. 과도한 상상력이나 자칫 언어유희에 빠질 수도 있지만 더 감각적인 이미지로 세밀히 형상화시켜 ‘그래 맞다, 맞다’ 하며 깨달음과 발견으로 감동할 수 있는 시 한편 기다리는 시인들은 매 순간 설렘이 있어 나이를 먹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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