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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境의 아침>이종암 / <대경일보> 2016년 4월 19일(화)
아트코리아 | 조회 291
<詩境의 아침>이종암

화경花經

-정숙

무리 지어 손잡고
비슬산을 오르는 저 구도자들,
벗은 몸으로 겨우내 제 몸 채찍질하더니
무얼 깨달아 저리도 환히 세상을 밝히는지

꽃이라고 다 참꽃은 아니다
봄바람 남실남실
연분홍보라 화경花經을 읽는다
그 향기에 젖어
대견사 새 법당 풍경을 흔들어 깨운다

풍경 소리 새침하게 날아올라
하늘 운판을 깨져라 두드린다
정작 깨지는 건 바람 소리, 그 깃털들,
떨어진 그 깃털만이
진달래 꽃잎 위에 야단법석이다

-정숙 시집『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문학세계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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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집 『신처용가』를 펴내면서 스스로 ‘처용 아내’라 말하는 정숙 시인의 7시집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를 읽는다. 질펀한 ‘에로티시즘의 안과 밖’(이태수)으로 세상을 노래한 것은 이전 시집부터 연속선상에 있는 정숙 시인의 특장(特長)이다. 등단 25년을 지나 칠순을 눈앞에 두고 펴낸 이번 시집에는 내용과 형식에서 그 완숙미(完熟美)를 한껏 보여주는 작품들이 여럿이다. 표제시「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를 비롯하여 「연서連書」「화경花經」「수묵화 한 점」「하관」「풋울음 잡다」등이 예의 그 시편들이다. 이 시집으로 그는 지난 2015년 제25회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시「화경花經」은 진달래(참꽃) 군락지로 유명한 대구의 비슬산과 그 정상의 대견사지터에 새로 들어선 대견사 법당의 풍경, 그 아래 진달래 꽃잎으로 마련한 야단법석(野壇法席)의 큰 노래이다. “비슬산을 오르는 저 구도자들,” “연분홍보라 화경花經”의 참꽃을 “봄바람 남실남실” 읽을 때 번진 “그 향기”가 “대견사 새 법당 풍경을 흔들어 깨”우고, 그것이 또 “하늘 운판”과 “바람 소리, 그 깃털들”이 “진달래 꽃잎 위에 야단법석‘으로 이어지고 펼쳐지는 활달한 그림이 참 좋다. 정숙 시인의 시를 통해서 “하늘 열쇠 간직한/꽃과 열매”(「연서連書」)를 보니 그게 또한 경(經)이로다. 우리는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풋울음 잡다」) 나올 정숙 시인의 다음 시집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이종암(시인)

<대경일보> 2016년 4월 19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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