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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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소금 봄호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영영이란 말의 뜻-가설무대-2
아트코리아 | 조회 347
[시와소금 봄호 이 계절의 좋은 시 읽기]

        영영이란 말의 뜻 
             - 가설무대-2


                              정 숙



말 한마디 하지 못하게 꽁꽁 얼려버린다
숨 거두자말자 이제 끝이라는 듯
빨리 길 찾아가라며 서슬 시퍼렇다
마지막 인사도 못 하게 막아버린다
상주들은 그의 무대를 빨리 걷어치울
궁리만 하다가 망자는 잊어버린 채
국밥 후루룩 마시며
잔치인 양 웃으며 손잡고 모여 든다
입관, 화장, 뼛가루 묻을 때까지도
영영 이별이 무슨 뜻인지 먹먹하다
그 절차 다 끝나야 비로소 그가 없다는
사실, 날을 넘길수록 현실이 다가 온다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질 때
매화 꽃 소리 죽이고 피어날 때
별리가 나즉나즉 중얼거린다
누구라도, 생이 무대를 떠날 땐
봄눈이 매화 꽃잎 얼릴 때처럼 매섭게
차가워야지, 무대를 빨리 비워줘야지 
 
- (시와 소금), 2022년 겨울호




* 시 읽기
 제목을 한자어로 보면 永永(영영), ‘영원히 언제까지나’의 의미로 볼 수도 있고 아라비아 숫자 00, 즉 값이 없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무(無)의 개념이다. 

인간이 생명을 버리고 사망진단을 받았을 때 냉동고에 안치되는데 이를 두고 ‘말 한마디도 못하게 꽁꽁 얼려버린다’고 했다. 시인의 시각에서는 고인이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산 사람이 정을 끊고 냉정하게 ‘숨 거두자말자 이제 끝이라는 듯’ 말문을 막고 기왕이면 ‘빨리 길 찾아가라며 서슬 퍼렇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도 못 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생전에 그렇게 고귀한 사람도 세상을 떠나면 얼른 못 보내서 상주들을 망자의 ‘무대를 빨리 걷어치울 궁리만 하다가’ 또 밥을 먹고 ‘잔치인양 손잡고 모여‘드는 모습으로 역설적 표현을 한다. 

사실은 이별이 기쁘지 않기 때문이다. 고인의 ’뼛가루 묻을 때까지도 영영 이별이 무슨 뜻인지 먹먹하다‘ 가 ’그 절차 다 끝나야 비로소 그가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그가 시각적으로 사라진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생기를 품고 푸르던 은행잎이 슬픔과 그리움으로 ’노랗게‘ 떨어지고 ’매화 꽃‘도 소리 죽이고 피어나는 시린 이별이 ’나즉나즉‘ 아프게 오는 것이다.

그 얼마나 사랑했던가, 짧은 이별의 의식 기간 중에 망각하려고 슬픔에서 도피하려고 일상에서 몸부림치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승의 현실, 그러므로 저승으로 갈 때는 ‘봄눈이 매화 꽃잎 얼릴 때처럼 매섭게 차가워야지’, 내가 냉동된다고 서러워 말고 ‘무대를 빨리 비워줘야지’ 라고 망자의 마음을 불러서 이별의 철리를 담담히 나타내는 정 숙 시인은 결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 (추천 조승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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