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    업데이트: 23-09-25 02:00

바람다비제

분권 14, 가을]여름비, 씨앗들, 징을 치다
관리자 | 조회 128
씨앗들, 징을 치다
 
 
사층 베란다에 갇힌 봉선화, 몹시 다급한가 보다
붉게 꽃 피워 여문 씨앗을 터뜨리기 위해
내 어둔 상념의 숲 그늘까지 밟아대고 있다
두꺼운 유리창을 넘어 들어온
봄, 여름 햇살을 잘라 머금고
 
성질 마른 이에게
기다림이란 낙타 없이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길
길고 촘촘한 속눈썹으로 바람모래 삼키며
신기루 물빛에 멱을 감으면서
고운 꽃물 길어 올리느라 펌프질하고 있다
 
그 간절함으로
살아온 날들을 뱉어내기보다 달게 씹어야 한다
뽀드득 맛있게 자근자근 씹을 줄 아는 이만이
오아시스를 맞이할 수 있다
 
어둠은 나를 깨우고
가시오갈피 나무 사이로 끌고 다니면서
손등과 얼굴을 찔러 핏자국을 남긴다
그 핏자국이 바람을 깨우면
시린 바람이 숨은 한을 깨우고
그 한이 시를 쓰면서 징을 친다
[분권]
 
 
 
 
여름비
 
 
 
 
 
가뭄 다스리는 소나기, 그 빗줄기 속엔
불이 들어있는가
 
풀뿌리들
젖은 흙덩이들과 애무하려 허겁지겁 꼼지락거린다
지친 나뭇잎들 서로 입술 내밀며 흐느적인다
 
 그래, 살다가 저렇게 니 내 없이 스며들어 절정에 몸 부르르 떠는 때 있어야지
그래야 짧은 생, 살맛나지
 
 대찬 거목들과 돌탑 쌓느라 갈증에 시달리는 키 낮은 나무들, 서로
엉켜 꽃대 올려야 어둔 뜨락 밝힐 수 있지, 함께 푸른 하늘 바라볼 수
있지
 
 물에서 불 찾아 꽃 피우는 그 이치 풀뿌리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무들도 깨닫고 있었는데
 
금 무궁화 단 사람들만 스며들 쥴 모른다
서로 똑똑한 척
비가 물이지 불이냐 쌈박질이나 하면서
 
저들 또한 여름 빗물을 삼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활화산 불꽃들이니 어쩌겠는가
 
분권 1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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