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0    업데이트: 24-01-17 11:10

위기의 꽃

미루나무와 담쟁이,숟가락 섬[정 숙]
관리자 | 조회 80
미루나무와 담쟁이
정 숙
도난당하고 있었다
미루나무는
제 삶을
야금야금 훔쳐 먹는 담쟁이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관자가 되었다
솔직히 처음 그들이 슬쩍 발을 걸쳤을 때는
반가웠고, 외롭던 참에 당연히 손 내밀었다
얄궂게도 차츰 밟고 오르면서
그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를 지어, 수만 개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지우면서 머리끝까지 올라가
생긋이 미소 지으며 담쟁이는
더 밟고 올라갈 곳을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향해 손 흔들고 있었다
여름 이파리들이 하마 노랗게 떨어지는데
한 발 양보가 백 발 양보라는 것을 미루나무는
진작 몰랐던 것이다
아매도 늦은 밤 불면의 파도에 시달리며
지금쯤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겠지
소사스레 담쟁이는 인제 옆 나뭇가지를 향해
애처로이 손 내밀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애써
누군가를 저리도 막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가?
어린 왕벚나무와 하늘이 대책 없이
방관자인 것이다, 다만
바람이
가끔 부르르 떨며 나무를 흔들다가 갈 뿐,
그래도 나무는 덩굴이 떨어질까
지 발등에 힘줄 세우며 떠억 버티고 서 있었다
 
 
 
 
숟가락 섬[정 숙]
 
사람의
섬과 섬 사이
숟가락엔 어느 노가다의 탄식이 남아있는가
 
메마른 영혼의 물기 마르지 않게
기꺼이 메아리가 되어주는
범종의 파문처럼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으면
삶과 죽음
몸과 몸 사이의 생존을 위해
 
평생 밥을 실어 나르는
하늘님의 고단한 노동이 보인다
 
새삼 밥 한 알의 무게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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