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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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오늘의 자작추천시〉정하해, 동태
아트코리아 | 조회 583
동태

그 집에서는 동태로 끓인 탕만 판다 
누런 창문 두어 개사이로 좁은 내실이 그런대로 갖추어진 
한옥을 개조해 칠순의 그녀가 
밥벌이 삼아 끓여내는 탕이, 낮에만 끓는다 
늘 한산해 보이는 마당을 채우는 건 목련 그 늙은 나무뿐 
가지만큼 사람이 든 적도 없고 잎만큼 산뜻하지도 않은 
거기, 목련 폈다 
지붕을 가리고도 남아 길 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작금이 
일 년에 한번은 오지게 잔치를 벌인다 
동태가 말라 황태가 되는 건 일도 아니지만 
동태가 탕으로 푹 끓여지는 일은 더 쉬운 일이지만 
어느 쪽으로든 억울해서 목련은 대신 슬퍼서 오는 것이다 
그녀가 처음부터 동태를 죽이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듯 황태가 되어가는 그녀도 얼었다 풀렸다 
목 좋은 꽃 때가 있었을 터 
동태를 위해 목련꽃이 노제를 지내는 동안 
지상의 사이사이 그 슬픔 나누어 가질 천만가지 꽃들
얼굴을 부풀리고 있다


* 작가노트


벌써 이별한 봄이 서너 개월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채워진 꽃들의 귀환도 만만찮다. 명태만큼 이름을 많이 가진 생선도 드물 것이리라, 그냥 식탁에 오르니까 먹는 것이고 불리는 이름마다 쓰이는 용도도 다르기에 흔하디흔한 우리의 식문화를 이끌어온 것도 이것이다. 어느 날 목련이 피어 마음을 다칠 때 즈음, 동태탕과 늙은 그녀가 오버랩 되는 건 이미 탕을 그리워하는 나이로 넘어 섰다는 것에 나 역시 묵어가는구나 느끼게 되었다. 흰 목련과 동태 사이, 굳이 따지지 않아도 그녀의 삶은 고요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이 어찌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는가. 시간과 공간의 분별로 하루를 끓이고 사는 그녀의 누옥에 핀 목련이 어떤 애증으로 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순하지는 않는 저들의 관계를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했다. 

정하해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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