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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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오늘의 자작추천시〉정하해, 바닷가 오월
아트코리아 | 조회 531
바닷가 오월


 

해안을 잡아 맨 흉터가 여기저기 나있다 
누가 아프게 치대었던 가 보다 
파도는 살 다발로 그곳 가리려 애쓰고 
해안은 멀리 떠나려고 애쓰고

발이 흠씬 붓도록 
독사 같은 슬픔도 여기서는 천만의 위안이다

그리움에 공소시효는 없어 
그렇게 물가에 내 처질 동안 
아무데나 붉은

그렇듯 슬픔은 무력해서 동해안 끝까지 
해당화 몇 몇 송이가 
둥둥 밀고 가는 오월

 

* 작가노트


몸에서 염분이 다 빠져나갔는지 오후는 늘 기운이 없다. 바깥의 소란은 담벼락마다 장미가 왔다고, 이맘때 호들갑 떠는 건 허공이고 바람인데 나는 그것들에 치여 봄만 되면 자주 몸살을 한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오는 길 그야말로 장미, 줄장미 천지였다. 간판 위로 얼비치는 장미의 핏빛 사설이 그나마 기운을 살리게 해, 좀 거뜬한 걸 느끼게 해서 다행이다. 동해안 물이 범람하지 않고 늘 거기서 치대다 늙어가듯이 사람이라는 의문은 바다와 같아 잠잠한 생이었다가 더러는 분노의 바다를 홀로 저어가다, 섬을 만나 적막히 삭히는 방법을 배우는 생애였다가, 실로 그런 것들로 하여 삶이라는 과제를 끝까지 이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하해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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