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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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오늘의 자작추천시> 정하해, 독감
아트코리아 | 조회 540
독감


 

옛집은 살들이 흘러내려 검은 뼈대뿐이고 
겨울 달밤을 질러가던 낙엽은 독사진으로 남아 
지금도 소리 날 것 같다 
뒤란 줄장미 순이 대충 번져 빽빽하도록 
일가를 이루어 사는 게 또한 반가워 찔끔 눈물 난다

장날 아버지가 사다 
심어주었던 장미로 하여 스승의 날 한 다발 꺾어 
교탁에 올려놓던 그 쪼그만 손이 늙어

너도 어렸고 나도 어려 하염없이 붉던 
그 오지던 날들을 뒤돌아보는 일이 참 멀었었다 
내가 처음 세상을 디딘 자리 풀들마저 아는 얼굴이 없어 
적멸이 씁쓸하고 아려


* 작가노트

 

나이가 들면 센티멘털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어떤 사물이든 주체라기보다는 객관적일 때, 그 거리감에서 오는 개인의 심적 동요로 하여 몸과 마음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형산강이 흐르는 곳에서 살았다. 물론 멱을 감고 재첩을 줍고 그때 내 또래들이 하는 놀이라고는 그런 것이었다. 며칠 전 그 형산 강변에 詩목으로 세워진 내 시도 볼 겸 고향엘 갔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지만 그러나 언제나 멀리 두고 살았다. 물론 부모님의 부제인 탓도 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옛집을 찾았다. 집은 빈터만 남았고 감나무 세 그루 그리고 장미,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풍경이 눈물 날 정도로 반가웠었다. 그 집에서 어깨동무라는 신문을 읽었고, 서울 유학 중, 학원이라는 학생잡지도 사서 방학 때면 원두막에 가져다 놓고 읽었다, 그때의 정서로 하여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했지만 다행이 시인은 되었으니, 

정하해 시인은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살꽃이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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