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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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2018 텃밭시인학교 봄문학기행4 - 초대 특강 정하해 시인
아트코리아 | 조회 615


정하해 시인




 

화장터까지 두 시간묵정 길 다 찾을 수 없어 노제路祭는 생략

버스 아랫배 그를 눕혀놓고 어딘가 꽂혀있을 벽제 더듬는다

침침한 허공 귀찮은 바람을 쳐넣고 나는 떨어진 낙과처럼

생뚱맞게 앉아 마른 입술을 뜯어낸다

 

오십 해 갓 넘긴 그를 꺼내어 읽는다

골마다 저당 잡힌 고샅길의 문서들 선무당이다

어쩌다 팔월에 떠밀려 마주 앉은 나를 잡고

한때 봉숭아 꽃물 속 빠뜨리는 재미로 산 적 있었다

세 번 들여야 저승 길 훤하다며 사흘 밤 아무 것 허락지 않은 손톱

지지는 날은

찐득한 내부內部를 열고

몸져누운 상한 길들을 끌고 나왔지

 

살아생전 그의 무기였던 법구경法句經 한 페이지 귓속 음판을 때린다

훔쳐 갈 것 없는 생을 가로 질러 버스는 주저앉고

명주옷 허옇게 너풀거리는 그가 앞서 걷는다

환승역 구내 쓸쓸한 악수를 한다

그가 벗어 놓은 헌 살덩이 수습해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이름 함께 봉인한다

그저께 따온 꽃잎에 나 올려놓고 쾅쾅 못질한다

푸르락 뼈들이 타오른다너무 붉어 신들린 듯

떨고 있는 대궁을 짚고 그가 웃는다
 

정하해살꽃이 피다전문

 



 


 


 



 

낮을 이별한 저녁은 때론 급히 오게 마련이다

 

혁명을 논하던 술잔과 입을검문하지 않은 어둠과

누군가를 소리 나게 부르고 싶은 이 땅에 없는 얼굴들에게

술잔을 돌린다

 

잠시잠깐 벌떼로 만나 새벽이면 흩어지는 구름들처럼

눈을 뜨면 모두는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한다

독한 햇볕과

그 볕을 찬양하던 노동이

 

어스름에 몰려든다

같이고향을 만들기 위한 포장마차 안의 훈김으로

애써 만들어내는 건 죽어도 청춘이다

죽은 청춘을 두고 마시는

 

일할 목뼈가 건재하게 만져지는 술이 들어가는 통로 그 통로

눈물을 숨기다 보면

노래는 언제나 끝이 휘어진다

 

저녁의 상에 앉아

억눌린 아가미들이 서로를 음복하며 뼈가 빠진 부분에

술을 부어주는,

 

정하해날마다 만찬전문

 



 

앙코르와트 마른 밀림으로 버석거렸다

무명으로써는 신들을 열람하기에 마음이 검을 뿐이다

 

통곡의 방에서 한 사내가 가슴팍을 친다

그 방을 만든 신은 죽은 어미를 위해 남몰래 통곡하며

울었다는

 

거기서 맞은 편 사내도 그렇게 가슴을 치며

중얼거리고 있다

저런 것은 쉬이 전염이 되는 어떤 병이 도지는 것처럼

 

전생을 시네마처럼 관람하는 타국의 밀림에서

 

원죄를 뒤지는 건 불행이지만

아랑곳없이 나붙은 젊은 신을 다 돌아보는 얼굴이 환대일 수는

없어서

 

석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석상 사이의 긴 뿌리와 그늘이 내 잎을 스캔하는

찰나의 속도나는 저 속도만큼

살다 가겠다는 생각이 내내 무성하였을 뿐이었다

 

정하해젖은 잎들을 내다 버리는 시간전문


 




 

링겔을 꽂고 퍼진 당신 어제는 서해 체하고

그제는 통도사 홍매에 체해서 기어이 병원 실려 왔다

 

어설프게 막히는 당신 죽을 삼키다 말고 운다

내장마다 풍경이 잠겨

한 모금 물마저 삼킬 수 없어 굶는 당신

 

일 년 몇 번은 체했다 살아나는 당신

수액이 다 떨어질 때까지

구금이다

 

말하자면 애기동백 마을에서 쓴물까지 뱉어내다 쓰러진 후

제 정신 아니었다

누가 손가락 찔러 피를 땄다 흉장에 끌어 모은 동백을 빼내는 일

땅이 붉다

 

 

링겔이 줄어드는 동안 또 나가고 없다

어디서 중치 막혀 못 오는 당신지금 간단하지가 않다

 

정하해간단하지가 않다전문



 




 

그 충충한 행간 여러 장면 섞인

 

사람의 일몰이

 

모든 걸 생략하게 하는

 

대답이다

 

사치처럼 박혔던 노을은 갔다

 

후회를 만지작거리는

 

저 한 사람의

 

켤레를 어디 또

 

걸어두랴

 

슬픔이 슬픔을 혼합한

 

부림은 새빨개서

 

조그맣게 벌어지다 닫혀버리는

 

애월을

 

질질 끌고 가는 저 길고 긴 해변이라는 팔

 

정하해거기애월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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