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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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오늘의 자작추천시> 정하해, 무장읍성
아트코리아 | 조회 526
무장읍성
 
정 하 해
 
사월 입술은 아침나절 다르고 오후가 다르다

 

먼 데 봉우리들까지

트인 말문이 초록이다

바람을 먹은 보리의 까탈까지, 돌아보면 대답처럼

소란하지 않은 데가 없고 거기

공복을 논하며 하염없이

치대는 또한

지그시 누르는

저 무장, 열고 들어오는 청보리

받아 적는 여럿 다발의 사람들

무장무장 흘러가는 등이

밑그림이다

* 작가노트

몇 해 전 고창에 있는 무장읍성과 고창보리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몇 만평 너른 평야가 청보리로 비단처럼 깔려 있어 마치 성곽이 지키는 어떤 군중 같았다. 
사월은 천지간 꽃들의 색깔이 무게를 더하지만, 이맘때 들판은 보리가 자라 피는 곳도 많아, 한때 나는 보리가 필 때쯤이면 보리밭을 찾아 무작정 떠났던 적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듯, 보리밭은 내 유년의 추억이며 친구였었다. 한 이천 평가량의 밭이 있었던 집에서는 봄이면 그 밭에 나가 한 해의 씨앗을 심던지, 아니면 보리밭의 상태를 살피는 일이 부모님의 일이었기에 보리밭 고랑을 뛰어다니는 바람의 기억과, 또 밭둑에서 쑥을 캐러 다녔던 그 봄바람 희뿌옇게 날리던 기억이 늘 나를 따라 다녔다. 보리가 피면 깜부기를 뽑아 아이들과 장난치며 놀았던 그 소중한 추억이 어쩌면 내 마음의 안식처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리밭을 찾아 하염없이 바라보던 일은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거기서 위안을 찾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놀이터 같은 밭이 지금은 남의 것으로 팔렸지만, 사월이면 먼지바람 이는 그 아득한 궁핍 너머 어머니의 흰 수건 두른 모습과 아버지의 쟁기질 소리, 난 늘 그것이 짠하고 아프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아버지도 늙고, 내 서정의 양식이 지금껏 생경하게 떠올려지는 이러한 것들이 있어, 시를 쓰는 사람으로써는 큰 자산목록이 아닐 수 없다.정하해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살꽃이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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