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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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23-07-04 09:55

언 론

<오늘의 자작추천시> 정하해, 간 고등어 한 손
아트코리아 | 조회 569
간 고등어 한 손
 
정 하 해
 
아버지 올해로 아흔이다 
그 아흔에 한 수 모자라는 어머니
수청 드는 일이 평생 직업이어서 
주름이 한 주름 덮고 적멸을 건너가는 중이다 
천 개의 얼굴과 만 개의 심장을 
매일 달래며 왔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열락을 간 치는 일이어서 
아버지 곁의 그녀가 범람하지 않은 이유였던 거다 
저렇게 한결 같은 정서를 
알 것 같다가, 이해불가인 때가 많다 
심해深海가 깊어 들어가 볼 수 없는 거기 
아무 일 아닌 듯 수청 드는 
저 부서지지 않은 얼굴이 
이미 적멸을 알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헤매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생애를 
쏟아 붓는, 어쩌면 
사무침이 없어질 때까지인지도 모른다
 
* 작가노트

아버지의 일은 곧 어머니의 일이다. 늙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아버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어머니로부터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도 탓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같은 여자로써 천만 번은 싫어, 삶을 내던지고 싶은 적도 있을 터인데, 순리를 따른다는 게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이 시대에 아직도 고분고분하고 사는 그녀의 삶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부부라는 것 어느 한 쪽이 져야만 평화로운 게 아니던가, 여자라는 이름만이 부각되던 그 시대의 숱한 어머니들이 걸어간 길 산티아고 순례 길처럼 온 생애를 바쳐 이룩해 놓은 일심동체라는 말, 그 말이 온전히 성립되기에는 생애 상처가 어디 억 만개 가지고 되었을까마는 망망대해 이생을 저어가는 두 사람의 합의가 저 노을처럼 곱게 지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닮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만 무성하다.  

 

정하해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2003년 『시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 살꽃이 피다』『 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을 펴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하고,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 일일문학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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