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노닐다
본인의 그림은 장자의 소요유의 가치와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자연과 합일이나 음유의 모습까지는 도달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산책이나 잠시 명상을 할 수 있는 길을 숲을 통해 찾아보았다. 숲은 나무가 우거진 곳을 말한다. 숲은 나무뿐만 아니라 물의 순환, 토양의 생성과 보존에 영향을 주며 많은 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 숲을 먹으로 뿌리기, 흘리기, 칠하기를 반복하여 숲 사이로 스며든 빛을 따라 생긴 그림자의 모습을 담고자 하였다. 수묵은 오랫동안 변화를 거듭하면서 형식적 전개에 따라 독특한 표현양식 속에서 정신과 사유가 발전 되어 왔으며 그 중 먹은 정신을 표현하는 재료로 깊은 내면을 지향한다. 먹이란 매우 신비스러운 세계를 지니고 있어 사람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색채는 그 심성에 좌우된다. 묵이 먹이고, 흙과 검은 것이 합하여 묵이라 하였는데 단순히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색을 암시하고 묵의 검은 것은 현玄과 동일한 색으로써 하늘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묵은 재료로만 보지 않고 우주의 의의를 지닌 정신성을 내포하고 조형적 특징의 하나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의 작업 속에는 먹이 주된 재료이며 방법이다. 사람과 자연의 한 호흡을 느끼며 단순한 자연의 형태가 아니라 그냥 풍경 속에 담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린 정경이라 생각한다. 숲은 잠깐의 아름다움이기보다는 먹의 은은한 향기가 배어있어 긴 여운을 남기며 눈부시지가 않다. 산골짜기의 바람을 타고 그 바람은 영혼의 노래를 담는다. 이 처럼 그 숲을 화폭에 옮겨본다. 먹의 향기, 먹의 율동이 붓을 타고 감각을 통해 마음에 숲을 가져 본다.
장자의 「逍遙遊」에 지인至人에게는 사사로운 마음이 없고 신인神人에게는 공적이 없으며 성인聖人에게는 명예가 없다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천지자연의 본연의 모습을 따르고 천지만물의 다양한 변화에 순응하며 무한한 세계에서 노니는 자가 되는 근거이다. 여기에 나오는 無己는 無功이고 無名이기도 하다.
장자의 표현대로 한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타인의 간섭이나 억압을 받지 않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성질이나 능력에 따라 행위 할 수 있는 상태를 절대자유의 세계 또는 절대행복의 경지라 하여 그것을 소요유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무릇 작고 큼은 비록 다르다고 하겠으나 자득입장에 따른다면 만물은 그 본성에 임하고 그 능력에 맞게 일을 할 것이며 그 분수에 마땅하게 각자 행위 할 것이니 이것이 소요의 으뜸이라.’
이와 같이 소요유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능력을 깨닫고 그에 맞게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 자연의 모습을 따르고 본질을 배우고자함에 있다. 장자의 유遊에는 근원적인 즐거움이 있으며 정신의 안정을 얻어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면 순수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연유 된 것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맑고 깨끗하고 고요함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감정을 바탕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자신과의 혼연일체가 되어 발전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달해 김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