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칼럼❘
헨델의 ‘할렐루야’와 연꽃 한 송이
경북신문 2024. 9. 19
위대한 예술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꽃피는지 모른다. 독일 출신의 작곡가로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의 명곡 ‘할렐루야’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 곡은 헨델이 건강 악화로 투병하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남의 돈을 빌려 쓰면서 그 돈을 갚지도 못하는 역경 속에서 쓰인 곡으로 알려져 있다.
헨델이 ‘실패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다’라고 밝힌 바도 있지만, 이 불후의 명곡은 가장 힘든 시기에 음악만이 그의 구원이었듯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구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안겨 주면서 종교음악이면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지구촌 곳곳에서 공연되는 이 곡은 헨델의 대표적인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마흔네 번째 곡이다. 예수의 생애를 기리는 ‘메시아’는 1741년 영국 런던에서 작곡한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 등 3부로 구성된 오라토리오로 ‘할렐루야’(가톨릭은 ‘알렐루야’라 함)는 그중 2부 ‘수난과 속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음악 수련을 한 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헨델의 ‘메시아’는 창작한 이듬해인 174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예수의 수난 시기인 사순 주간에 초연됐으며, 1743년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돼 연주를 듣던 왕도 일어섰을 정도로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할렐루야’가 작곡된 배경이 역경과 수난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정이지만, 헨델이 꽃길만 걸었더라면 이 불후의 명곡이 과연 작곡될 수 있었을는지. 서양 속담에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워 버리면 그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헨델에게 역경과 고난이 없었다면 이 명곡이 빛을 볼 수 있었을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예술이 역경과 고난 속에서 태어나듯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것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특히 연꽃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피지만 흙탕물이 묻지 않고 정갈하며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는 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꽃이 피는 연못에는 시궁창 냄새가 사라지고 꽃향기가 번져 흐르게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연꽃이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유가에서는 올곧은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의 기품에 비유되기도 한다. 주변의 부조리나 오염된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잎을 터뜨리는 연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언제나 청정한 몸과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연꽃은 왜 진흙탕에서 피는지//마음 낮춰 바라보고 있으면/말 없는 말을 하는 듯/환하게 머금고 있는 미소로/혼탁한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정결한 마음은 고난 속에서/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몸소 일깨우고 있는 것일까//진흙밭 속의 나를 되돌아본다“ —자작시 ’연꽃‘
소박하게 쓴 시지만, 이 시에서는 연꽃을 닮고 싶은 마음을 간결하고 진솔하게 담아 보았다. 진흙탕에 우아하게 피어나는 연꽃은 몸소 그 아름다운 자태와 ’말 없는 말‘(침묵)로 혼탁한 진흙밭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난과 무거운 마음에 일깨움을 안겨주며 자성해 보게 한다. 그 자성은 다시 세상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게도 한다.
”풍진세상을 탓하다 말고/옥빛 먼 하늘을 우러른다//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언제 있었던가//멀리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꿈속의 나라가 다가오듯 가물거린다//연못 진흙탕에는 환하게/피어나는 연꽃 한 송이“ —자작시 ’연꽃 한 송이‘
요즘 세상은 풍진이 넘쳐나는 것 같아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연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옥빛 먼 하늘‘을 우러르게 하며, 희망의 전언이 들려오는 듯한 환상에 젖게도 한다. 게다가 연못의 진흙탕에서 환하게 피어나는 연꽃 한 송이는 풍진세상일지라도 고고하고 기품 있게 살아가도록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헨델의 오래된 ’할렐루야‘를 새삼 듣게 하고, 연꽃의 고고한 아름다움을 새기게 하는 건 왜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