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 서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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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    업데이트: 15-12-30 10:35

석재1관

산청-여재당 편액
아트코리아 | 조회 2,566


如在堂(여재당) 편액: 石齋 徐丙五(석재 서병오 1862~1935)가 쓴 글씨다. 여재: 항상 한결 같아야 한다.

 

산청 용담정사(龍潭精舍)

 

경남 산청군 신등면 신차로 545 (단계리)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58

 

용담정사(龍潭精舍)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597번지에 있는 용담정사(龍潭精舍)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담정사는 용담 박이장(龍潭 朴而章.1547~1622)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齋室)이다. 용담선생은 조선 중기시대에 경북 고령지역에서 활동하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을 하였으며, 관직은 대사헌(大司憲), 도승지(都承旨),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며 일생을 마쳤던 문신이다.

용담선생이 저술한 문집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또한 문학적 가치가 아주 높은 문집이다. 선생은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이 모셔진 성주의 청천서원에도 함께 배향(配享)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자손들이 이곳으로 이주를 하여 정착하면서 부조묘(不祧廟)를 받들고 정사를 지어 그 이름을 용담정사라고 하였다. 이는 용담선생이 살던 고령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일곽(一郭)은 대지가 옆으로 낀 까닭에 대문과 용담정사, 사당(祠堂), 사당의 협문이 옆으로 되어있는 병렬(竝列)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용담정사는 제사를 모시기 우한 재실로 정면 5, 측면 2칸의 막배지붕이다. 중앙의; 2칸은 대청(大廳)으로 되어 있으며 좌우로는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전면에는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기둥이며 기둥 상부에는 단순하게 대들보만 지지하는 보아지만을 둔 민도리집의 공법을 갖추고 있다.

사당(祠堂)의 대문은 솟을삼문으로 하는데 반해 여기서는 한 칸의 협문으로 소박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 건물의 전체적인 수법은 1920년대 중반의 단순하고 소박한 구조를 갖춘 형식이며 그리고 건물의 병열 배치와 적절한 크기의 창호(窓戶) 등과 더불어 근대적인 기법을 반영되어 있는 건물이다.

용담정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현판은 여재당(如在堂)이다. 이는 사람이 한결 같아야 한다는 뜻이며 글씨는 대구에서 활동 하시던 석재 서병오(石齋 徐丙五.1862~1935)선생의 글씨이다. 용담정사(龍潭精舍)라는 현판은 병규(秉圭)라는 분의 글씨이나 이 분에 대해서 아는바가 전혀 없다. 용담정사에서 옆으로 난 협문(夾門)으로 들어가면 재실이 있다. 재실에는 민화풍의 벽화가 그려져 있음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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