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8    업데이트: 17-10-23 10:28

매일신문연재삽화모음

나무꾼 강사가 되다⑤ 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홍원주
아트코리아 | 조회 1,828
 
교포들 웃고 울린 강연…머나먼 이국땅에서 기립박수 받아
 

세계 다니며 강의하게 해주세요

아내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뉴질랜드 한인 단체·교회 초청

수백명 대상 강연 녹화 호주도 보내

귀국하는 비행기서 인생 돌이켜 봐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은 진리구나’

 

영수증은 정식 영수증이 아니라 붓두껍으로 살짝 인주를 묻혀 대충 써준 메모 용지였다. 컴퓨터에 입력하여 입금 내력을 표기해 두면 되는데 담당 직원이 바쁘다는 핑계로 처리되었다고 가도 된다고 하였다. 사람이 워낙 착해 보이니까 일부러 그리 처리하고 이중으로 돈을 갚으라는 거였다. 착한 농민은 틈나는 대로 찾아가 항의했으나 정신이상자 취급을 했다고 하였다. 소를 네 마리 판 것은 마을 사람들도 모두 알고 착한 사람이 노름으로 돈을 잃거나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다시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으려고 결심하였으나 도저히 덮어둘 사연이 아니었다. 나는 무료 법률 상담하는 곳을 알려주고 억울함을 밝히라고 위로해 주었다. 농촌에는 의외로 사기꾼들과 좋지 않은 사람들이 순진하고 착한 농민들 등을 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도는 하늘에 닿는 끈이라는 말이 있다. 아내는 항상 새벽부터 못난 남편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자기가 믿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거름 더미에서 귀한 자리에 앉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세계 각지를 다니며 강의를 하고 꿈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아내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내가 드디어 멀고도 먼 뉴질랜드에 초대받아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한인 단체와 교회에서 토종 성공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왕복 항공권과 체류 비용 일체, 강의료까지 선불로 받고 나가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자기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고 주장하였다. 아무튼 감사한 일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검색이 가능하고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과학 세상에 살게 된 덕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머나먼 이국 땅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고 초대받아 강의를 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마치 수십 년 전 프랑스 미녀와 결혼한 어느 한국 총각의 경우와 같았다. 한국의 총각은 늘 프랑스 최고 미녀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마침내 프랑스 최고의 미녀와 결혼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서로의 꿈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이들 커플은 마침내 결혼을 하였다. 해외토픽에 나오고 온갖 잡지 신문에 도배가 되기도 하였다. 누가 소개를 한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가서 만나본 사이도 아니었다. 단순히 총각의 꿈으로 이루어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거창한 컨성팅 회사에서 다리를 놓아준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가거나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기쁨이 더했다. 나는 초대하는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강의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기발하고 포복절도할 개그 멘트나 정든 조국을 떠나 향수를 느끼며 사는 교포분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강의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흔히 마음이 넓은 사람들을 말할 때 태평양 같다고 한다. 정말 태평양은 넓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속 1천 킬로미터 이상으로 날아 11시간을 가서야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소문난 뉴질랜드는 참으로 공기부터가 상쾌하였다.

초대 단체 간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환대를 받으며 초대 장소로 갔다. 한인 단체에는 수백 명의 청중들이 모여 있었다. 참석하지 못한 교포분들을 위해 비디오 녹화를 허락하였다. 장장 두 시간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늙은 아버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사연과 여순반란사건으로 장남을 잃는 참척의 슬픔을 당하고 세상을 살다 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때는 장내가 숙연해졌다. 동양 사상과 효를 연결하여 강연을 할 때 청중들은 눈물을 훔쳤다. 고전 개그와 시사 개그로 다시 청중을 웃겼다. 나는 양심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다시 강연을 하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다음 날은 한인교회에 가서 강연을 하였다. 교회와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강연을 하였고 교민들이, 신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항상 조국을 잊지 말고 굳세고 건강하게 살아가라고 격려를 하며 강연을 마쳤다. 교회에서도 녹화를 허락하였다. 호주까지 테이프를 보낼 거라고 하였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았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은 진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에필로그

지금 세상은 참으로 편리한 시대이다. 서울과 부산을 두 시간대에 갈 수 있고 휴대전화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하루만 일을 해도 쌀을 한 가마니나 살 수 있다. 1950년대나 60년대에 비하면 참으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그런데 자살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 해 자살자 수가 1만여 명을 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것이다. 교통사고 세계 1위, 음주량 세계 1위, 저출산율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데도 무역 10위권 나라라고 큰소리를 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분석해 보았다. 자살률이 높은 것은 꿈이 부족하고 쉽게 포기를 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글씨로 쓰고 반대로 읽어보라! 살자가 된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보라. 반드시 좋은 날도 온다. 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전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삼키며 견뎠다.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반드시 그칠 때가 오는 법이다.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어쩌면 인류의 비극이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처럼 성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없다. 무려 열 달 동안을 태 속에 품고 가장 큰 고통을 당하며 출산을 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정성으로 몇 년을 키우고 가르쳐야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데도 현대 여성들은 출산을 기피한다.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남성이 없어 보여 결혼을 기피하고, 이왕 결혼한 여자 중에는 임신을 피하는 이도 있다. 임신을 기피하는 것은 여성의 고유한 역할을 직무유기하는 것이다. 만약 기피 여성 어머니도 임신을 기피하였다면 그 여성이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이 세상에서 희생정신과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종말의 서곡이라고 믿는다. 내가 이런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여성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한다. 사생활 침해며 여성 비하라고 말하기도 하며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이다. 나는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니 진실을 말할 권리도 있고 주장을 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농부들이 농사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농사를 포기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해 보라! 전답은 잡초에 묻히고 온갖 해충이 발생하여 사람들도 살지 못하게 된다. 만약 기관사나 항공기 조종사들이 운항이나 조종을 포기한다면 사람들은 먼 거리를 왕래하지 못하고 발이 묶일 것이다. 세상살이는 언제나 어려움이 함께하였다. 세상은 그 어느 곳이나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은 없는 것이다.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된다. 인간 한 사람이 온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한때 나는 지하 셋방에서 살며 좁고 딱딱한 방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때의 소원은 넓은 방 푹신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숲속에 전원주택을 짓고 넓은 방에다 푹신한 침대도 들여 놓았지만 편한 것은 잠시고 옛날의 따듯한 구들방이 생각나서 온돌방을 만들었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보릿고개의 기억들이 추억의 보물창고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나는 천상 촌놈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인지 모른다. 찔레꽃이 피면 찔레나무 떨기에 얼굴을 묻고 진한 향기를 맡는다. 아버지가 생각나고 추억이 그리워 콧등이 뜨거워진다.

양평의 산은 여름에도 밤에는 한기가 느껴진다. 온돌방에 장작을 지펴야 따듯하게 잠을 잘 수가 있다. 나는 지게를 지고 죽은 나무를 찾아다니며 장작을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나무꾼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돈을 벌려고 장작을 팔았는데 지금은 홀몸노인에게 장작을 그냥 가져다준다. 기름값을 아끼려고 온돌방에 거하시는 노인이 몇 분 계신다. 온돌이 좋고 역시나 예전 분이라 온돌방을 고집하고 살기 때문이다. 나무꾼이라는 유행가가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나무꾼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단어임이 분명하다. 나무꾼 강사의 일생을 압축하고 기술해 보았다.

<9월 26일 자는 2017 시니어문학상 2017 수필 부문 최우수상 김봉순 씨의 ‘우담바라’가 게재됩니다.>

 

매일신문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