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바라본 낮하늘과, 낮의 시간까지 담아낸 밤하늘 작품 소개
전시는 23일까지

김윤종 작가가 갤러리동원 앞산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김윤종 작가의 예술적인 소재는 하늘이다. 하늘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경북 영양의 산골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자연스럽게 제한된 시야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하늘은 끝없이 열렸다. 지상의 폐쇄성과 하늘의 개방성은 그의 기억에서 대비를 이뤘다.

김윤종 작 '하늘보기'. 갤러리동원 제공
어린시절 하늘은 그의 놀이대상이었다. 낮은 구름이 산자락을 타고 흐를 때면 그는 친구들과 구름 그림자를 따라 뛰었고, 놀다 지치면 바람 좋은 언덕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어린 시절 하늘을 바라보며 키웠던 상상력은 훗날 그의 회화를 떠받치는 근원적인 감각이 됐다. 절망의 순간에도, 기쁨에 겨워 두 팔을 높이 들었던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 “제게 하늘은 삶의 여러 순간을 관통해온 기억의 장소입니다.”

김윤종 작. 갤러리동원 제공
김윤종 개인전 ‘푸른문장’이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열리고 있다. 20년 가까이 하늘을 그려온 작가의 작업이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의 변곡점을 맞는다. 오랫동안 그는 땅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풍경을 그렸다. 주인공은 들판과 산, 마을과 길 위로 펼쳐진 광활한 하늘과 구름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비행기 위에서 바라본 하늘로 시점의 변화를 감행했다。그에게 시점의 변화는 구도의 변화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작가가 오랫동안 바라봐온 세계와 거리를 새롭게 설정한 것을 의미한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던 하늘이 인간의 삶과 자연이 맞닿는 풍경이었다면,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구름은 지상의 질서에서 한 발 벗어난 세계처럼 다가온다.
“구름 너머에 있을지 모를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그렸습니다.”
그가 하늘과 구름을 작업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무렵이다.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던 중 스케치 여행에서 마주한 강렬한 하늘이 계기가 됐다. 비가 그친 뒤 햇빛이 드러나며 펼쳐진 구름의 장관은 그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었다.
“비가 그친 뒤 햇빛이 드러나면서 펼쳐진 구름의 장관은 저에게 자연의 원초적인 조형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습니다.”
이후 하늘은 그의 회화에 독립적인 조형의 대상이 됐다. 특히 구름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가능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이다. 산처럼 솟았다가 섬처럼 가라앉고, 거대한 파도처럼 번졌다가 바람에 흩어진다.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 강력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구름에서 발견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조형의 원리다.
그가 현장에서 마주한 하늘을 회화로 옮기는 과정도 이와 닮아 있다. 자동차나 비행기로 이동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하늘을 만나면 사진을 찍고 짤막한 메모를 남긴다. 사진이 당시의 장면을 불러오는 시각적 단서라면 메모는 그때의 감정을 호출하는 장치다.
“사진은 기억을 불러오는 단서이고, 메모는 당시의 감정을 호출하는 장치입니다. 글 쓰듯이 메모해 놓으면 그 기억들이 왔다 갔다 해요.”

김윤종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갤러리동원 제공
그의 회화는 특정 풍경의 재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단순 재현 이상의 의미로 작동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채집된 이미지와 감정이 작업실에서 다시 조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하나의 하늘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다시 구성된 하늘”이다. 좋은 구름의 형태를 포착했다고 해서 그대로 옮기는 것도 아니다. 여러 장소에서 얻은 이미지가 한 화면에 결합되고, 색과 구도 역시 회화의 목적에 따라 변형된다.
“재구성은 눈앞의 자연보다 더 선명한 자연의 감각을 화면에 남기기 위해 필요한 회화적 개입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변화는 바로 이 ‘회화적 개입’의 방향이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지상의 풍경과 하늘의 관계를 통해 자연 전체의 장엄함을 보여주었다면 신작에서는 지상의 풍경을 걷어내고 하늘 자체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화면을 가득 채운 구름은 그에게 하나의 세계가 된다.
하늘 위 구름이 주인공이 되자 보다 사유적인 화면으로 거듭났다.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시선에는 땅 위의 인간의 그림자가 드러난다. 인간은 땅에 서 있고 하늘은 그 위에 있다는 것. 그러나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서는 그 위계가 흔들린다. 인간이 중심에 있던 풍경은 사라지고, 구름과 하늘이 화면의 주체로 등장한다.
“하늘과 구름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이동인 동시에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그가 말하는 ‘다른 세상’에는 개인적인 기억과 존재에 대한 사유가 겹쳐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늘은 영적인 자유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살아가며 맺은 수많은 관계와 사연도 언젠가는 내려놓게 된다. 지상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얽힘으로부터 벗어난 곳을 상상할 때, 그에게 하늘은 삶의 바깥이자 죽음 너머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늘이 영적인 자유의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김윤종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갤러리동원 제공
20년 가까이 같은 소재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인간은 변화를 추구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하늘이라는 단일한 소재를 그렸지만, 그 속에서 작은 변화들을 거쳤다. 그의 변화는 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초기에는 삼라만상의 형태와 색을 인식하며 하늘에 다양한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작업이 이어지면서 색과 형태가 지나치게 많은 설명을 만들어낸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하나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자연을 설명하기보다 자연이 스스로 감각되도록 화면의 조건을 조율한 것. 이는 회화적 절제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보는 사람이 봄에는 봄 느낌이 날 것이고 가을에 보면 가을 느낌이 날 것이지, 내가 이것은 가을로 보라고 결정해서 가을색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구름의 원형적인 물성과 하늘의 맑음이다. 실제로 구름은 가볍지 않지만 인간이 감각하는 구름은 한없이 가볍다. 그의 ‘맑음’은 솜사탕처럼 가벼운 구름에 대한 표현이다.
'맑음'은 오일 물감을 사용해 한 작품에 6~7차례 붓질을 반복하면서 구름의 덩어리에 깊이를 더하면서 형성된다. 한꺼번에 물감을 두껍게 올리는 대신 마르고 다시 올리는 과정을 거치며 구름의 부피와 공기의 깊이를 조절한다. 솜사탕처럼 폭신한 구름의 물성을 살리면서도 화면 전체가 탁해지지 않도록 물감의 양과 붓질을 세심하게 조절한다.
“맑음은 색채의 밝기보다 구름의 무게와 부피를 품으면서도 공기처럼 열린 화면을 유지하는 회화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음’은 그에게 색채보다 관계의 문제다. 구름의 무게와 하늘의 비어 있음, 물질성과 공간성이 서로 긴장을 이루면서 화면을 구성한다. 구름이 화면을 채우지만 화면은 닫히지 않는다. 오히려 구름의 덩어리가 클수록 그 사이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존재가 강하게 감지된다.
김윤종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러한 긴장과 맞닿아 있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재현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거리를 둔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형성과 변화 앞에서 인간의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때 노을을 그리면서도 자연에 대한 ‘모독’처럼 느꼈다는 그의 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화학물감으로도 자연의 그 느낌을 못 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윤종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갤러리동원 제공
그는 밤하늘도 그린다. 밤하늘 작업에서는 이 경계가 더욱 분명해진다. 낮하늘이 눈으로 경험한 자연의 형상을 재구성하는 데 집중한다면 밤하늘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다룬다. 화면 아래에 추상적인 색채를 먼저 만들고 어두운 색으로 덮은 뒤 테이핑을 떼어내 별을 드러낸다. 별마다 색과 형태가 다르고, 의도한 결과와 우연히 발생한 흔적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밤하늘의 추상성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과 연결된다. 실제 밤의 풍경을 재현하는 대신, 어둠에 가려진 낮의 하늘과 구름까지 화면 안에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그의 하늘을 단순한 풍경의 재현에서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밤하늘에도 낮의 하늘처럼 구름과 바람이 지나갑니다. 단지 암흑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가 ‘구름에 바람을 추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구름의 움직임까지 포착하고 싶다는 속내였다. 김윤종에게 남은 과제는 정지된 화면 안에서 이 움직임을 어떻게 감각하게 할 것인가에 있다. 구름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까지 화면에 불러들이고 싶은 것.”
“하늘에 어떤 바람을 넣어야 한다는 게 계속 숙제였어요. 지금도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시는 23일까지 갤러리동원 앞산.
황인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