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권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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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5    업데이트: 23-11-20 10:14

언론&평론

[내멋대로 그림읽기] 권유미 작 '2021-69 상원 (上元) 100호F- 162.2130.3' 혼합재료, 순금 2021년
아트코리아 | 조회 662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백자 달항아리를 볼 때마다 희디 흰 자태와 원융무애한 형태가 주는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느낌은 단순한 형태에서 오는 절제된 조형미와 더불어 어머니 품같은 포근함과 넉넉함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한다. 아마 이런 까닭에 많은 사진가, 미술가가 달항아리를 오브제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권유미의 이 작품은 사진이 아니다. 엄연한 회화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면, 금박으로 달항아리를 작업할 때 모델링 페이스트를 바르고 그 위에 붓으로 터치하면서 작가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화면이 모두 마르고 난 후 금색 아크릴 물감을 바르고 그 위에 바니쉬(광택이 있는 투명한 피막을 형성하는 도료)를 발라서 살짝 말릴 뒤 가로·세로 각각 3cm 크기의 순금 금박을 붙인다. 이때 붓으로 표현된 물성 탓에 금박이 갈라지고 구멍이 생기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박 부치는 것을 3, 4겹으로 올리고 붙이기를 반복해 완성한다.

"나의 작업은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를 소재로 자개와 금박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 결과로 황금빛 찬란한 달항아리는 표면에 거친 붓의 흔적을 보이면서 단순한 달항아리의 재현을 넘어 일렁이는 달빛을 닮은 작가적 에너지 흐름의 장(場)을 회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은 말했다.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라고. 아득히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인지력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달은 그들이 대면한 가장 밝은 오브제였다. 낮 동안의 태양은 너무 눈부셔 볼 수 없었지만, 달은 예외적으로 천 번 만 번 이지러지면서도 그 둥근 형식은 여전히 항아리처럼 둥실 떠올라 많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눈에 각인됐을 것이다.

인식의 기원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주체와 개체라는 이항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지식의 단초로서 호모 사피엔스의 눈에 들어온 달은 수많은 뇌세포들을 자극함으로써 '지식의 씨앗'이 됐거나 혹은 '감성의 첫 일렁임'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어쩌면 달은 인류 문명의 맹아다. '월인천강'(月印千江). 하나의 달이 수없이 많은 강을 비추듯 황금빛 찬연한 보름달은 지구로, 지구로 향해 문명의 빛을 뿌렸으리라.

권유미가 달항아리 형상에 이전의 소재였던 자개를 쓰지 않고 굳이 비싼 금박을 사용하게 된 이유도 항아리로부터 달의 형상을 추론해주길 바라는 바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미적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들은 삶에서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더듬이를 가진 존재들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본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학의 재료가 삶의 시간적 선(線)이라면 미술의 재료는 삶의 공간적 면(面)이다. 그 면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게 화가의 역할이며 작품의 수준은 그 단면을 얼마만큼 입체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 권유미는 금빛 달항아리를 화면에 그려놓음으로써 우리에게 태곳적 원시인의 눈에 들어왔던 달의 영상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그 달은 한치 앞을 모르는 실존적 불안감 속에서 삶을 지탱하게 한 친구이자 기도처였다.

아! 오늘 밤엔 천공에 뜬 옛 친구, 달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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