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대구미술협회 회장이 향년 57세의 나이로 지난 1월 10일 별세했다. 김 회 장은 지난해 2월, 4년 임기의 제22대 대구미술협회장에 당선돼 활동을 이어왔으나 지병이 악화되어 유명을 달리했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한 그는 계명대 미술대학과 예술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했다. 30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500여 회의 전시에 참여하며 전업 작가 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다양한 소재와 현대적인 방식이 많지만, 고집스럽게 산 과 꽃, 늪과 같은 자연을 현장에서 사생으로 이어온 작업으로 유명하다. 고향의 산하를 닮은 서정적인 이미지를 구사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연에 순응하면 서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흙빛, 풀 한 포기의 몸짓이라도 읽어내고자 노력할 따름’이 라며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서 “유명한 선배 화가가 구상작업이 가장 빛나는 시기는 60대쯤이라고 늘 말했다. 그래서인지 벌써 60대가 기다려진다.”라며 늘 새 꿈을 꾸던 사람이었다.
한편, 대구청년작가회, 대구수채화협회, 한유회, 대구사생회 등 굵직한 지역 미술 단체의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지역 미술계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대구청년 작가회 회장을 맡았을 당시 지역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를 주관했고, 2011년 대구미술발전인상, 2016년 대구미술인상, 2019년 정수미술대전 초대작 가상 등을 수상했다.
대구미술협회 취임 이후에는 대구아트페스티벌 8개 구·군 미술협회 대표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대구미협 자체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서울 인사동에 대구· 경북 미술협회를 통합한 자체 갤러리를 오픈해 회원들의 서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는 준비에 한창이었다.
김정기 作
고인의 대학 선배인 김결수 작가는 고인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진 지난 연말, 지역 작가들과 기부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곁에서 오래 지켜본 고인의 삶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동료 작가들이나 주변을 자기 몸처럼 돌보고 살아 ‘의리 있는 사람’으로 통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미술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틀, 사흘씩 오가면서 그의 짧았던 삶을 남달리 안타까워했다.”라며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구미술협회 노인 식 부회장은 “고인과 협회 일을 함께하며 최근 몇 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집과 작업실밖에 모르는, 이상하리만큼 성실한 사람이었다. 협 회 일도 너무도 열심이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실행하고 자 했는데,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 더 아쉽다.”라며 애석한 마음을 드러냈다.
고인은 생전 예술에 대해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자주 되새기곤 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는 갔지만, 그의 예술과 지역에 뿌린 활동의 결실은 길이길이 남 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김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