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    업데이트: 19-12-19 15:35

언론정보

‘삶의 상황’에 빗댄, 사물과 도구에 관한 사색 - 김영동
아트코리아 | 조회 1,573
김효선 초대전 사물思索-도구에서 읽는 삶에 관한 사색

조각가 김효선



경북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조각가로서 꾸준한 활동을 펼쳐온 김효선 작가의 제14회 개인전이 수성아트피아 초대전으로 2019년 11월
26일부터 12월 1일까지 개최되었다. ‘사물사색思索-도구에서 읽는 삶에 관한 사색’이란 제목 아래 최근 신작들과 그동안의 대표작들을 함께
선보이는데 기존의 ‘가위’ 시리즈와 그것의 연장으로 재해석한 작품 〈아브락사스에 의한 댄싱, 2019〉 그리고 새로 ‘연탄’ 모티프에서 얻은
착상으로 만든 〈인생, 2019〉 등이 전시된다.

‘사물로부터의 삶에 관한 사색’으로 요약되는 전체 전시의 주제는 현상학적 존재론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예술관을 관통하는 한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서민들의 겨울철 생필품인 연탄과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는 가위와 같은 생활도구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 삶의 현실적 상황과 인간 존재들
간의 관계 나아가 작가 자신의 실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드러내려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 처음 제출된 ‘연탄 오브제’ 작업을 제외하면 출품작 대부분은 목재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기본 재료 중에 목재가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데 목재를 판재로 가공한 다음 그 위에 깎고 새기는 조각(carving) 기법을 적용해 예의 투각 부조 작업처럼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형태작업이 끝나면 약간의 채색을 더해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작업들은 3차원적 형상이지만 벽면에 설치된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회화와 같은 평면작업에 비해 부피와 무게를 가지고 공간을 점유한다. 제작을 위해서는 깎고 다듬는 조형작업에 재료의
저항을 크게 받는다. 창작과정에 강도 높은 노동이 뒤따르기 마련이어서 회화처럼 영감에 의한 즉흥적인 작업이 불가능하며 완성에 긴 시간이
걸린다. 자연히 재료와 함께 사색하는 시간이 많고 제작 중에는 자주 재료의 물성과 밀착해 호흡하게 된다. 특정 재료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조각가들의 기호는 주로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목재 조각을 선호하는 김효선 작가의 나무 예찬도 예외가 아니다. 재료를 가까이 하면서
나무가 가진 성질에 대해 더 깊게 느끼게 되고 결국 자연을 보는 자신의 시각까지 생태주의적인 관점에서 재정립하게 된다. 재료가 지닌 가치에
대한 이런 깨달음은 다시 역으로 그가 조각의 소재로 목재에 집착하는 동기가 된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김효선 작가의 조각 작품은 조형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특징들이 눈에 띈다. 우선 전시방식에 있어서 대개 조각 작품들은
평면회화와 달리 바닥에 놓인 채 전시되기 마련인데 김효선 작가의 경우 벽면에 고정시킨다. 전시장에 들어서보면 알지만 단순한 흰 벽에 걸린
작품들의 구조나 형태감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색다른 첫인상에 관객의 반응은 곧 익숙한 형상들에 안도하면서 나무 재질에서 발하는
밝은 색의 생동감과 형상의 박진감에 감각적으로 쉽게 동화될 것이다. 조각이란 평면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입체로 만들어져 실제 공간에
놓인다는 이유 때문에 작품대상의 실재감이 원래 장점으로 꼽히는 장르다. 게다가 김효선 작가의 경우 모티프가 한 예로 ‘가위’라는 퍽 낯익은
도구들이면서 인체를 상징하도록 형상화한 그 자체의 당당한 모습에 즉시 공감하게 된다. 불붙은 연탄을 소재로 한 작품 〈인생, 2019〉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면을 읽기보다 모형을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른 것처럼 평면상의 추상적 공간이 아닌 실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입체를
대하므로 모든 작품들이 훨씬 핍진하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확고한 신뢰감을 준다. 그래서 가위의 두 날이 온전하게 결합되어 있거나 또는
분리된 채로 구성된 〈커플〉이란 작품들의 형식적 표현이나 함의 내용도 관념적이기 보다 구체적인 감각적 자극으로 어필한다.

조각 작품들은 기법자체에서도 붓을 사용하는 회화에서의 경우와 비교할 때 흔히 붓놀림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회화적 표현성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즉 구조적 결구나 중력 그리고 조각칼이 지나간 표면에서 진지함과 함께 풍부한 개성을 느낄 수 있어 조각을 더 진실한 예술이라고 했던
미켈란젤로의 주장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요즘처럼 이른바 조각의 장르가 확장되고 각종 한계나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는 그런 믿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덧없고 가벼운 존재감과 유희적인 요소가 현대문명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역설적인 조각들의 경쟁적인 출현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효선 작가의 경우 기법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끌과 망치를 손에 쥐고 노동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어 전통적인 조각의 미적가치를 유의미하게 연장시키고 있다. 투각과 부조의 결합, 평면 층으로 겹(layer)을 쌓는 것 등 참신하고 혁신적인
현대조각의 실험정신을 견지하는 한편 전통적인 조각의 미학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예술가임을 확인시켜준다.



모티프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현실인식



김효선 작가의 작품들 중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가위를 비롯해 재봉틀, 망치 그리고 화분과 연탄 등에서 보듯 일상 속에서 쉽게
목격되는 물건들이다. 그저 한갓된 사물들이라기보다 현실의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상황들과 맞물려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일상생활의 사소한 도구들이거나 용품들로서 삶의 다양한 풍경들과 오버랩 된다는 점이다. 도구는 유용한 기능을 가지고 작동하는 형태나
쓰임새만으로도 작가의 관심을 끌만한 모티프겠지만 연탄 같은 용품들은 시간의 흔적과 삶의 궤적을 함축하고 있어 모두 인간관계의 풍부한
서사가 덧 씌워져 있다. 누군가의 삶의 세계와 결코 분리해서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 작가의 주제의식은 바로 이러한 사물 도구의 용도와 기능에
대해 사색하며 현실의 세계에서 겪게 되는 삶의 흔적, 즉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것을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시야는 처음에 사물의 쓰임새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점차 사람들에 대한 관계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먼저 물리적인(physical)
형상들을 재현하면서 우리의 삶과 그 속의 인간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으로 발전한다. 두편으로 나뉘어져 각각으로서는 작동할 수 없고 하나로 연결돼 완전한 기능을 발휘하는 가위는 곧 관계에 대한 비유로 이어진다. 사람과 존재 사이의 관계성으로 차원이 전환된 사유는 작가의 또 다른 모티프들로 확장된다. 삶의 상황에 빗댄 사물과 도구의 세계는 현실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곧 작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삶의 상황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지평을 넓혀간다. 하이데거를 빌어 말하자면 김효선에게 예술은 현실 사회의 인간관계를 사물의 존재를 통해 드러내는 활동이다.

그러나 예술이 우리 존재의 상황을 드러내는 일이라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그 방법이 관건이다. 작가의 현실인식은 관념이나 개념도
아니고 시각적 사유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며 결국 조형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김효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독자적인 시각적 사유를 예리한
감각에 의한 표현으로 구현했다. 아울러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제작(practice) 전반과 설치방식에 생기를 불어넣어 더욱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2019. 11. 28.

미술평론가_ 김 영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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