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    업데이트: 22-04-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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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_화가 장이규 - 월간대구문화 2022.4월호 / 현대인의 노스탤지어를 흔들다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초대전 여는 화가 장이규
아트코리아 | 조회 1,192
이사람 ::

현대인의 노스탤지어를 흔들다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초대전 여는

화가 장이규

사회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개인의 일상도 속도를 지향한다. 그러나 가슴 한켠에는 늘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고향, 자연, 정다운 사람을 만날 때면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 장면이 그림이라면 ‘그림 멍*​’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1990년부터 ‘소나무’에 천착,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며 초록색의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화가 장이규(68)의 작품은 현대인의 노스탤지어를 흔든다.
 

저 들에 푸르른 소나무

이달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는 한결같은 소나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장이규 초대전’(4. 12.~4. 20.)이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지난해 11월 극재미술관 초대전 이후 작업한 신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초대전은 퇴임을 기념해 갤러리에서 먼저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런 만큼 신작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작업했습니다. 그동안의 그림의 변화 과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소나무 작업을 시작한 것은 초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여름 풍경을 초록색으로 표현하던 중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굳이 고향을 떠올리지 않았지만, 고향 경주에서 보고 자란 계림의 소나무가 그의 DNA에 내재되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그림 속에는 독야청청 푸름을 발산하는 한 그루의 소나무, 어울림을 은유한 군락을 이룬 소나무가 등장한다. 소나무의 배경은 푸른 하늘이거나,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산이 될 때도 있다. 그는 초록의 채도와 명도를 조절해 작품 속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소나무의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구상이지만, 현실의 풍경이 아닌 상상, 이상의 공간으로 화면에 자리매김한다. 그가 그린 소나무는 민족의 기상이나 혼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늘 변함없는 푸름을 발산하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는 힘이 있다.​

“소나무를 그리다 보니 조형적 요소에 매료되어 계속 그리게 됐습니다. 소나무가 민족 정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고향에 가면 늘 그곳에 있는 나무라는 믿음의 대상이기도 하죠. 제가 그리는 그림에는 늘 소나무가 등장한다는 관람객의 믿음도 생긴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서 만나는 관람객은 그림 속 소나무가 기법적이나 구도적으로 변한 요소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전업 작가 그리고

장 화백은 1970년대 말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1990년대 초 미술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서울의 모 화랑으로부터 전속 제의가 들어 왔다. 그렇게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여느 회사원처럼 아침 일찍 화실로 출근하고 6시 정도에 퇴근했다. 그리고 어떤 전시든 거침없이 응했다. 그것이 전업 작가의 임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소나무도 그리게 되었다. 인물을 주로 그리던 그가 1992년 개인전에서 초록색에 관한 연구의 결과물로서 선보인 소나무는 어느새 작업의 동반자가 됐다. 1995년 전시에서는 ‘소나무’를 주제로 본격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평론가들로부터 ‘초록색의 연금술’, ‘직관과 감성의 하모니즘’ 등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전업 작가로 살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1세대이기도 하다. 전업 작가 생활 20년이 될 무렵 직업의 전환점을 맞는다. 전업 작가에서 교수가 된 것이다. 2010년 그는 모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수로서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작업을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교수, 화가로서 또 다른 치열한 시기를 보내고 2020년 2월 정년퇴임했다. 그리고 전업 작가로 돌아와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전문관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다시 출퇴근을 하며 전업 작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제자를 위한 길라잡이

지금 전업 작가의 삶은 혼자 작업만 하던 이전의 삶과는 조금 달라졌다. 자신이 양성한 제작들이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라잡이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업 작가로서 계속 작업하고 전시회를 이어왔던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전하려 한다. 그는 미술 작가로서 살아가는 제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지난달부터 대구아트파크 갤러리 나무에서 그의 제자 21명이 출품한 전시를 마련했다. 대구아크파크 개관 기념 기획 두 번째 전시 ‘The Enter’(3. 28.~4. 16.)는 전도유망하지만 기회가 적었던 신진 작가의 미술시장 진입을 돕고 예술계의 다양성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소통의 장이다.​

장 화백은 지금까지 6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1987년 대구 태백화랑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1년에 적어도 두 번 정도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매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고민하고 작업하며 작가로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화랑, 관람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온 여정이었습니다.”라며 화업 30여 년을 회고했다. 그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리다’ 와 ‘물감의 물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천착한 작품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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