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4-05-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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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붓끝은 춤추고 옛 이야기는 되살아난다 - 천지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44
담원 김창배 화백 인사동 작업실서 만나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 선생 일가
한국화·민속화·선화 등 여러 장르 섭렵
‘운곡시사’ 속 철학·정신 그림으로 표현


[담원 김창배 화백이 먹으로 그려낸 그림을 펼쳐 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그림 속 동·식물들은 생기가 넘치는 듯하다. ⓒ천지일보 2024.05.07.]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촤르르르’ 한지가 부스럭대며 펼쳐질 때마다, 그 위에 그려진 옛 이야기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화려한 분홍빛 꽃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향기를 따라 날아오른 나비 한쌍이 공중에서 화사한 날갯짓을 선보인다. 푸르고 웅장한 소나무는 시간을 뛰어넘은 듯한 단단함으로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그 아래 차를 마시며 유유자적하는 선인의 모습에서는 자연의 이치를 깊이 사유하는 여유가 느껴진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작업실에서 만난 담원 김창배 화백(박사)은 한지를 한 장 한 장 펼쳐 보일 때마다 그윽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붓끝에서 서서히 우러나는 묵향 같은 그림들은 세상의 빛을 받아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담원 김창배 화백은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인 단원 김홍도 선생의 일가(一家)로, 단원 화맥(畵脈)을 잇는 한국 화가다. ‘담원(潭園)’이라는 호는 스승이자 풍속화의 대가 금추(錦秋) 이남호(1908~2001) 선생에 의해 부여됐다. 김 화백은 한국화는 물론이고, 민속화와 선화(禪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으며 서예를 포함한 문인화의 경계까지 그의 예술 세계를 확장시켜왔다.

2008년 김 화백은 북경화원미술관 내 제백석기념관에서 한국 화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민속박물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테르가 명상센터 초청전을 비롯해 예술의 전당 개인전 등 국내외에서 한국 미술문화의 진수를 전파해왔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고, 제11회 한국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그의 예술적 업적은 명실공히 인정받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세계미술축전에서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현재 문화예술학 박사이자, (사)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운곡시사’ 속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김창배 화백이 그림과 함께 운곡 선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5.07.]


◆운곡 선생이 남긴 시 그려 내

김 화백은 선의 흐름과 먹물의 자연스러운 번짐을 통해 내면의 생각과 깨달음을 한지 위에 담아낸다. 그는 국민들이 문헌에 담긴 깊은 이야기를 시각적 언어로 더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술로 승화시킨다. 최근에는 운곡 원천석(1330~미상) 선생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300여점의 작품을 완성, 시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내 새로운 차원의 예술 세계를 선보였다.

운곡 원천석 선생은 고려 시대의 충직한 학자로, 고려 말 혼란스러운 정세를 목도한 후 벼슬길 대신 치악산에서 은둔의 삶을 선택했다. 두문동 72현 중 한 인물이자, 조선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왕 위에 오른 태종이 두 차례나 찾아와도 등용 제안을 거절한다. 그의 의지와 신념은 ‘운곡시사’를 통해 후세에 전해졌고 김 화백에게 깊은 영감을 줬다.

“운곡 선생의 철학과 정신이 담긴 이야기를 나의 붓끝으로 그려냈습니다. 이를 ‘기록화’라 칭하며, 선생의 외형적 모습뿐 아니라 사상과 정신을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운곡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청렴함’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덕목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김 화백은 운곡 선생이 되어 그의 삶을 한지에 옮긴다. 때로는 콩밭에서 잡초를 뽑고, 때로는 운곡 선생의 눈으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백성을 위로한다. 완성된 300여점의 작품은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책 제목은 ‘원주로 가는 길’이다.


[담원 김창배 화백 작품 (제공: 담원 김창배 화백) ⓒ천지일보 2024.05.07.]



◆‘불화’에 반해 그림의 길 걷다

김 화백의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이다. 어린 시절, 불자인 어머니를 따라 자주 절에 갔고 그곳에서 불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웠다. 절에서 불화를 따라 그리는 게 그는 좋았고, 불화 속의 새, 송아지, 사람 등을 그리며 자연만물을 사랑하는 눈을 키웠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던 김 화백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그림에 대한 지식과 시야를 넓히기 위해 자주 인사동에 갔고, 그곳에서 이남호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수학을 시작했다. 그는 스승이 중국에서 배운 다양한 화법과 서법을 전수받았고, 깊이 있는 예술적 식견을 쌓을 수 있었다.

김 화백은 (사)한국미술협회에 전통미술 선묵화 분과를 신설하고, 제도권 내에서의 자리매김을 통해 새로운 미술세계를 개척했다. ‘선묵화’는 선(禪)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심오한 생각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예술 형태다. 이러한 작품들은 종종 차(茶)를 주제로 하여 ‘차묵화(茶墨畵)’라고도 부르며, 차의 정신과 문화를 반영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차와 그림은 그의 일상이고 전부였다. 그는 ‘차묵화첩’ ‘차 한잔의 인연’ ‘그림찻방’ ‘차 한잔의 명상’ 등 지난 30년간 총 29권의 저서를 냈다. 이 중 ‘차 한잔의 풍경’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담원 김창배 화백 작품 (제공: 담원 김창배 화백) ⓒ천지일보 2024.05.07.]



◆‘한국화’ 설 자리 점점 잃어가

김 화백은 50년 이상 인사동을 지키며 한국 전통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봐야 했다. 그는 우리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대다수 화가들이 한국화보다 서양미술을 선호하기도 했다. 김 화백은 한국 전통 예술의 보존 체계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여전히 해외 문화를 선호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화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는 ‘2024 서울인사동 월드아트페어’가 열렸다. 김 화백은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서울 코엑스에서 화랑미술제나 다양한 아트페어가 진행되지만 서양화 중심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화나 서예, 족자 형식의 작품은 아예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제도를 깨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아트페어는 한국화부터 서양화, 수채화, 판화, 조각, 서예, 문인화, 캘리그라피, 선묵화 등 미술 장르 전체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 세계 19개국 20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정보를 교환했다. 행사는 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한국미술과 세계미술 사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천지일보 2024.05.07.]


◆‘직지’ 그림으로 표현해 내

김 화백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인 ‘직지(직지심체요절)’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200여점이 완성됐다. 직지는 고려 말 스님인 백운이 선불교의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으로, 1377년 제작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이 중요한 역사적 문서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김 화백의 이러한 노력은 직지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한국 문화유산의 보호와 환원에 대한 공론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림이 모두 완성되면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로 번역해 세계 각국에 알릴 예정이다.

김 화백은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됐지만, 문화 선진국으로서는 아직 부족합니다. 한국화, 서예, 다도, 한자 교육 등을 초등학교의 기초교육으로 채택해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전승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적극적으로 계승·발전시킬 때 한국이 진정한 문화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김창배 화백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작업실에서 다양한 작품을 펼쳐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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