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업데이트: 20-01-31 14:23

비평

1996 최병식 서문 「평담(平淡)한 산행(山行)의 묵필(墨筆)」
관리자 | 조회 807
<제12회 개인전 서문>
 
「평담(平淡)한 산행(山行)의 묵필(墨筆)」
 
최병식 / 미술평론가, 경희대교수
 
오대(五代)의 형호(荊浩)는 태행산(太行山)에서 말하기를 「범교만본(凡敎萬本) 방여기진(方如其眞)」이라 했다. 이 뜻은 「수만 번을 그리고서야 그 진(眞)의 경지를 깨달았다」는 내용이지만 다시금 천착해보면 그의 산수미학(山水美學)인 구득기원(俱得其元)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 여기에서 진산수(眞山水)란 무엇인가를 논함에 있어서 우선 그 형상의 아름다움에만 취하지 말고 자연의 내면적 실체에도 깊이 심취하여 그 본질을 궁구하고 관조해야 된다는 이면의 뜻이 담겨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석기 산수는 그 근간이 실경(實景)에 있다. 「실경」이란 관념적이고 허경(虛京)에 상대되는 단어 자체가 갖는 특수성이 있지만 우선 실제 한국의 산천을 대상으로 하여 진산수(眞山水)의 경지를 전재하려는 궁극적인 미의식을 바탕으로 이루고 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의 화필은 자신이 살고있는 대전은 물론 한국의 산을 주로 찾으면서 한국적 실경 즉 진산수의 구득기원(俱得其元)을 추구하고 있다. 그 작업량도 꾸준해서 수만 본은 아니라 할지라도 쉼 없이 쳐나가는 수묵의 운필은 전국 여러 곳들을 여행하면서 천여 점 이상을 헤아린다.
 
그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특징 중 가장 으뜸은 운필이나 준법(皴法)의 대범함이다. 이는 평소 강직 담백한 그의 품격과도 직결되는 측면이면서도 주로 암벽과 바위산을 즐겨 그리는 작업 전체의 주제설정에서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설악의 천불동 계곡」「울암산의 전설」등의 대작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그의 바위산 시리즈는 여백과 수묵의 강한 콘트라스트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일면에서는 다소 둔탁한 느낌으로 지나친 과장이나 관념화된 중량감으로 와 닿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분명히 김석기의 화면을 탄생시키는 요체가 되고 있다.
 
그의 여백과 수묵의 대비적 효과는 「오서산 정암사 설경」「설악의 울암산」의 비교를 통해서도 쉽게 간파된다. 설경이지만 기본적인 음영법은 여타의 대다수 작업과 직․간접적인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다.
 
특별히 바위를 선호하는 「산(山)의 작가」라고나 할까.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산의 자연정기(自然精氣)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수묵을 통해 궁구하려는 화도(畵道)를 추구한다. 마치 삶의 긴 등성이를 오르내리듯이 어떠한 극단적 비약이나 상황설정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평담(平淡)한 무욕(無欲)의 서정이라고나 할까.
 
예로부터 화론에서도 인자(仁者)와 지자(智者)의 즐거움으로서 「산수이형미도 (山水以形 媚道)」라고 했다.
이는 곧 산수는 형상으로서 도를 아름답게 한다는 뜻으로서 대자연의 정수를 표현하는 극치가 산수라는 말로서도 해석된다. 명멸하는 서구 현대사조가 무비판적으로 유행되고 있는 요즈음 김석기의 묵묵한 산행(山行)과 이형미도(以形媚道)를 향한 운필의 묵향(墨香)에는 자연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회화의 전통적 숨결이 있다.
 
다만 그의 이러한 진산수(眞山水)를 향한 현대적 재해석의 과제들이 어떻게 변신해 갈 수 있는지 예술이 「시대의 아들」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면 더군다나 전통의 현대적 해석은 이형미도(以形媚道)의 참뜻을 더욱 폭넓게 이해해야만 되는 숙제를 안게된다.
그것이 곧 겸제 정선이 추구하려 했던 참다운 진경산수(眞景山水)의 경지일 것이다. 김석기의 진산수(眞山水)가 겸제가 추구하려던 산수의 경지에 이르는 인고의 결실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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