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업데이트: 20-01-31 14:23

비평

1985 최병식 서문 「서정적(抒情的) 자연(自然)의 필가(箏歌)」
관리자 | 조회 547
<제6회 개인전 서문>
 
「서정적(抒情的) 자연(自然)의 필가(箏歌)」
 
최병식 / 미술평론가, 경희대교수(1985년 6월)
 
인간은 대자연(大自然)의 신비로부터 창공을 가르는 무한한 운율(韻律)과 정제(靜齊)된 조형의 시가(詩歌)를 창출하게 된다. 자연(自然)은 참으로 인류가 생성(生成)하게 되는 생명의 원천인 것이요, 영원(永遠)한 숨결인 것이다. 동양예술(東洋藝術)에 근본적으로 내재(內在)하는 이 자연(自然)과의 무궁한 만남은 시가(詩歌)요, 음악(音樂)이며 회화(繪畵)의 모든 것이리라.
 
최근에 들어서 제기되어지고 있는 전통산수에 대한 재조명의 사조는 결국 이 자연관(自然觀)에 대한 시대적 변천에서 유발되어지는 변환(變換)과
모색(摸索)의 현상인 것이며, 전통(傳統)에 대한 올바른 계승의 추구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수 천 년에 걸쳐서 이어져 왔던 전통적 자연관(自然觀)에 대한 적재(積在)되고, 내함(內涵)되어진 무허명정(無虛明靜)의 관조(觀照)세계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외형적(外形的) 테마의 변화나 급격한 방법의 시도에 앞서서 체득(体得)되어져야만 할 자성(自性)의 문제로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서구 모더니즘의 절대적 영향이 지배적으로 일반화된 물질문명의 한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야기되어지는 갖가지 형태의 괴리현상에 고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나, 거대한 도회문화 속에서 엇갈리는 전통과 현대의 회화관(繪畫觀)은 이와 같은 심각한 갈등의 현상을 형성하는데 많은 방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70년대의 한국화단은 실로 이러한 난제(難題)들이 적극적으로 재조명되어졌어야 할 시기(時期)였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의 혁신과 용기의 도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안주로 향하는 현실적 호황만을 누렸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지방화단의 경우는 많은 작가들이 서울로 이주하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이와 같은 현실적 난제(難題)들에 대하여 거론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인 것이다.

대전의 경우는 70년대 중반에 운산(雲山) 조평휘의 필묵(筆墨)이 촉발을 가하면서부터 곧이어 기산(箕山) 정명희가 과거 비형상적 시묵 (非形象的 試墨)작업으로부터 창묵(蒼墨)의 산수경(山水境)을 추구하게 되었고, 우송(雨松) 김석기(金奭基)는 수년간의 공백기를 넘어서 끊임없는 열기(熱氣)로 묵필(墨筆)의 산수경(山水境)을 이루어 왔다. 사실상 그는 80년도에 있었던 제1회 개인전 때에만 하여도 열기(熱氣)에 일치하는 실재적(實在的) 필의(筆意)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위 전형적 매너리즘의 산물들인 모필(模筆)의 기분이 벼루 한 구석에 자리하였던 그 때에, 우송(雨松)은 자신의 체득하여야 할 방법론에 대한 전반적 의식이 모종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음이 그간의 수 차례 전시회에서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물론 많은 실경(實景)스케치를 거듭하면서 수용된 외재적(外在的) 요인이 적지 않았음을 감지할 수 있겠으나 역시 그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그 자신의 개성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담백한 성품과 우직스러우리만큼 열정적(熱情的)인 노력이 해마다 1회씩 있었던 5회까지의 놀라운 변신의 기초였으리라 생각된다.

6회 째를 맞이하는 그의 세계는 이제 실제 자연의 형상에서 직관(直觀)되어지는 감성이 어느 정도 자기적(自己的) 각도에서 우송(雨松)의 필묵(筆墨)을 이루어 가려는 기분을 맛볼 수 있으며, 형상에 대한 묘회(描繪)에 그치던 그간의 열정(熱情)이 이제는 화면(畵面)의 전체에 충만 하려는 재구성의 담아(淡雅)한 공백(空白)과 함께 의경(意境)으로 향한 가능성을 제시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주왕산 일대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는 산형(山形)의 제한된 묘사가 한결 더 소멸되어지고 그 대신 산석(山石)의 준필(皴筆)이 크게 두드러지고 있으며, 담담한 서정적(抒情的) 기분이 계곡을 메우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5회 이후로부터 게을리 하지 않았던 실경(實景)의 체험에서 비롯되어진 자연의 섭리에 대한 가장 일관되고도 자연스러운 접근에서 비롯된 자기(自己) 시각(視覺)의 출발이었다.

이제 그의 화면은 지금까지 일관되었던 자연현상과의 단편적 만남에서 서서히 자연(自然)과 회화(繪畵)의 하모니를 추구하는 3자의 변주곡을 연주하려는 기나긴 여정을 나서게 된 것이다. 다만, 우송(雨松)의 그치지 않는 열기(熱氣)가 이제부터 내함(內涵)되어져야만 할 사유적(思惟的) 심상(心像)의 추구가 동시에 수반되어지면서 열려지는 적극적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향해 부단히 실험하여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울러, 답습적 전통의 매너리즘에 스스로를 얽매어 버리고 있는 많은 작가들 모두가 우송(雨松)과 같은 끈기 있는 자기변신과 제언(提言)의 용기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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