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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7

[이태수 칼럼] 새봄에의 기대
아트코리아 | 조회 158
 새봄에의 기대 ——경북신문 2024. 03. 20


요즘 세태를 바라보면 비인간화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이 점점 더 비인간화로 치닫는 ‘소유 양식’에 기울어지고, 상대적으로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존재 양식’이 희석되고 밀리는 형국 같기 때문이다.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의 차이는 ‘사물에 중심을 둔 사회’와 ‘인간에 중심을 둔 사회’로 변별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소유 양식을 지향하는 경우 돈, 명예, 권력에 대한 탐욕이 삶의 지배적 주제가 된다. 하지만 존재 양식은 소유하지 않고, 소유하려고 갈망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세계와 하나 되기에 이른다고 한다.
 
이같이 존재 양식은 부단한 자기 발전과 자기 창조를 지향하지만, 소유 양식은 충족 또는 만족이면서 동시에 자기 고정이어서 변화, 모험, 실험 등을 이반하게 마련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 같은 ‘소유’와 ‘존재’라는 삶의 두 가지 양태를 영국의 시인 테니슨과 일본의 시인 바쇼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소유 양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갈라진 벼랑에 핀 한 송이 꽃/나는 너를 틈 사이에서 뽑아 따낸다/나는 너를 이처럼 뿌리째 내 손에 들고 있다’는 테니슨 시의 화자는 꽃을 소유하려 하지만 꽃은 그 결과 죽어버리고 만다. 시인이 꽃을 소유함으로써 그것을 파괴해 버리게 된 셈이다.
 
바쇼의 경우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는 ‘가만히 살펴보니/냉이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울타리 옆에!’라는 하이쿠를 통해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꽃을 꺾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손을 대는 일조차 삼간다. 오로지 바라보면서 그것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의 고뇌는 뿌리는 아마도 삶이 소유 양식으로 기울어지는 게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의 주장대로, 그 같은 고뇌를 벗어나려면 소유 양식에서 방향을 바꿔 존재 양식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소유’는 ‘상실’을 이미 그 본질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소유가 목적이며, 그것을 위한 생산 활동이 수단 자체가 되기 때문에 휴머니즘과도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상처와 흠집 내기, 욕망과 불신감의 팽배, 집단 이기주의, 현실성이 희박한 말 잔치 등 그 치부를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우리의 정치 풍토는 갈수록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오는 사월의 지방선거가 가까워지자 ‘소유’만을 지향하는 패거리 짓기가 고질병처럼 번지고, 집단 이기주의나 권력 창출 의욕이 애국심보다는 훨씬 앞서가고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눈앞에 보이는 이해타산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는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목적 추구로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소유’만을 위한 온갖 편법과 눈가림이 동원되는가 하면, 마각이 드러나도 모르쇠요 남의 탓 타령이며, 얼굴에 철판을 깐 것 같은 느낌까지 안겨주기도 한다.
 
정치권은 편을 갈라 싸우면서 온갖 상처를 만들고 있다. 패거리 지어 갈등과 분열, 추락으로 치달으면서 양극화는 날로 골이 깊어지고, 어느 일 하나 안 꼬이는 게 없을 지경이다. 탐욕과 거짓, 땅에 떨어진 윤리의식 등 병폐들만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평상심을 되찾아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 혼란과 어둠 거꾸로 돌리기와 기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야 한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아래위가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새봄의 교향악을 빚으며 그 새 바람이 희망의 지평을 반드시 열 수 있어야만 한다.
 
자연은 언제나 하늘을 따른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존재 양식의 지향도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옛말에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모두가 하늘을 따르는 평상심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워지게 될까. 바쇼의 하이쿠가 보여주는 짧은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순전히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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