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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7

|이태수 칼럼| 크리스마스와 자선
아트코리아 | 조회 207
|이태수 칼럼|

크리스마스와 자선——경북신문 2023. 12. 21 
 

크리스마스를 앞둔 최근 서울의 한 사찰에서 신부, 수녀, 목사, 스님이 종교를 초월해 함께 시 낭송을 하는 자리가 마련돼 화제를 낳고 있다. 무산선원에서 열린 이 시낭송회에 초대된 김형목 성북동성당 주임신부, 이 요세피나 수녀 등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들, 시인 고진하 목사와 주최 측의 무산선원 주지 선일 스님이 올해 세상을 떠난 가톨릭신자 김남조(1927~2023) 시인의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무산선원은 신흥사 조실이자 시조시인으로 평소 문화예술인들을 적극 후원했던 설악 무산(1932~2018) 스님을 기념해 지난해 문을 연 사찰 겸 문화예술 공간이며,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이사장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관해 매달 문화 행사를 열고 있어 문화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마련된 이날 시낭송회에서 김형목 신부는 ‘마리아 막달레나’(김남조 시인의 세례명이기도 함)를, 고진하 목사는 ‘심장이 아프다’를. 성바오로딸스도회 수녀들은 ‘촛불’을, 선일 스님은 ‘목숨’을 낭송했으며, 선일 스님은 “오늘 이 자리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예수님의 사랑, 무산 스님의 화합과 상생의 정신이 이어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천주교와 불교는 소통과 나눔을 통해 상호친화를 모색해왔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천주교 사제들이 사찰을 축하 방문하고, 성탄절에는 스님들이 가톨릭교회를 축하 방문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필자도 선종하신 전 천주교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님을 따라 오래전 두 차례나 동화사를 방문하면서 이 일이 성사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탠 바도 있다.

기독교 목사도 참여한 이번 무악선원에서의 소통과 나눔의 자리는 점점 다양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 대화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데 대한 화답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해, 단결,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보다 자비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추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낭송회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군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예수님의 사랑, 무산 스님의 화합과 상생의 정신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는 선일 스님의 발언은 아주 소중한 메시지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쁘게 맞이하며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뿐 아니라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인류의 명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로마의 헤롯이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두려워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모두 죽였지만 누군가가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고 전했다고 ‘마태’에 전한다.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위협과 배척을 당하면서도 예수가 태어난 건 낮고 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이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이웃들과 함께 하는 ‘나눔’과 ‘베풂’의 의미를 지닌다. 이 근본정신에는 동서가 따로 없고, 그 의미가 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사랑은 나눔이며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예수는 온몸까지 내던지면서 가르쳐주었다.

유태인들의 ‘자선의 황금 계단’은 나눔과 베풂의 마음 상태가 천차만별이라고 일깨운다. 주고 나서 후회하는 단계, 상대방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주는 단계, 요청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 단계, 받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서 주는 단계,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모르는 단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을 모르는 단계, 주고받는 사람이 서로를 모르는 단계, 미리 자비를 베풀어 빈곤을 면하게 하는 단계가 그것이다.

자선의 참뜻은 금액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며 남을 돕는 마음을 일컫는다. 성서는 이런 마음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해마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뭉칫돈을 넣는 ‘얼굴 없는 천사’가 등장했지만, 올해는 어떨는지.

우리는 정이 많고 따뜻한 민족이라고 자부해 왔으며, 세계가 바라보는 눈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눔과 베풂을 향해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여는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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